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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 후, 일년 후 _ 프랑수아즈 사강 물론 그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녀가 살기 위해 그의 얼굴을 볼 필요가 있다는 것, 삼 년이 지났지만 날이 갈수록 그녀가 그를 더욱 사랑한다는 것을, 그에게는 그 사실이 거의 기괴하게 느껴졌다. 왜냐하면 그는 더 이상 그녀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들이 사랑하던 시절 그 자신의 이미지 그리고 그녀와 결혼하기 위해 자신이 했던 일종의 결심을 즐겨 떠올릴 뿐이었다. 니콜은 활자 매체에 대단하 존경심을 품고 있었고, 다른 사람의 직업에 대해 무척 경탄스러워했다. 그런 마음이 너무 심한 나머지 어리석게 여겨질 정도였고, 비판적인 평가를 전혀 하지 못했다. 게다가 그녀는 아마도 그에게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하면서 그 원고를 반드시 읽어야 한다고 믿었다. '니콜은 자.. 2012. 1. 30.
17 _ 황경신 나의 투쟁은, 그리움에 몸을 바치며, 나날을 헤어나가는 것. 라이너 마리아 릴케 "클래식한 데이트?" 니나는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는다. "그래, 아주 클래식한 데이트." "예를 들면 카페에서 기다리는 거. 기다리는 동안 보려고 가벼운 책 한 권을 갖고 가지만, 내용은 머리에 안 들어오고 자꾸만 문 쪽으로 눈이 가는거. 누가 들어올 때마다 깜짝 놀라고 실망하는거. 그 사람이 도착할 때쯤 심장이 먼저 알고 울리기 시작하는 거. 만나면 환하게 웃어주는 거. 별거 아닌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거. 같이 볼 영화 미리 예매해놓는 거. 그리고 어두운 영화관에서 두근거리며 살짝 손잡는 거. 그런거, 시시하니?" 니나가 알기로, 시에나는 절대적으로 좋은 것도, 절대적으로 싫은 것도 갖고 있지 않.. 2012. 1. 30.
검은 설탕이 녹는 동안 _ 전경린 한가로울 때, 오랜만에 맑은 머리와 바른 자세로 잠깐 삶을 쉬게 될 때, 누구나 그렇듯이 삶이 꿈속 같고 나 자신이 존재라기보다는 본질인 것처럼 무화되는 것을 느낀다 . 울음을 그치고 허무로 돌아가듯이... 스무 살이든, 마흔 살이든, 일흔 살이든 그것은 시간이 아니라 오히려 어떤 지점인 것 같다. 떨림과 어긋남과 차이... 그속에서 우리의 생은 LP판 속의 가수처럼 노래한다. '탈이란 어떤 경우든 은폐와 신비화의 역할을 하는 것이라야 상징과 표현이라는 두 개의 요소로 환원된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살짝 바꾸어 외우고 있었다. 얼굴이란 어떤 경우든 은폐와 신비화의 역할을 하는 것이라야 상징과 표현이라는 두개의 요소로 환원된다. 스무 살인 나의 얼굴을 날마다 껍질이 벗겨지는, 아직 역할을 얻지 못한 쓸쓸.. 2012. 1. 30.
핑퐁 _ 박민규 어느 순간,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편해졌다. 더 나빠질 게 없다고 느끼는 순간, 불안이란 감정 자체가 사라진 것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아무렇지도 않은 삶이 그래서 시작되었다. 세상을 끌고 나가는 건 2%의 인간이다. 입버릇처럼 담인은 그런 얘길 했는데 , 역시나라는 생각이다. 치수를 보면, 확실히 그런 인간이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된다. 출마를 하고, 연설을 하고, 사람을 뽑고, 룰을 정하는 - 좋다. 납득 한다. 이 많은 인간들을 누군가는 움직여야 하는 거니까. 수긍한다. 나머지 98%의 인간이 속거나, 고분고분하거나, 그저 시키는대로 움직이거나 - 그것은 또 그 자체로 세상의 동력이니까. 문제는 바로 나 같은 인간이다. 나와, 모이이 같은 인간이다. 도대체가 데이터가 없다 .생명력도 없고,동력.. 2012. 1.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