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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규9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_ 박민규 모든 사랑은 오해다. 그를 사랑한다는 오해, 그는 이렇게 다르다는 오해, 그녀는 이런 여자란 오해, 그에겐 내가 전부란 오해, 그의 모든 걸 이해한다는 오해, 그녀가 더없이 아름답다는 오해, 그는 결코 변하지 않을 거란 오해, 그에게 내가 필요할 거란 오해, 그가 지금 외로울 거란 오해, 그런 그녀를 영원히 사랑할 거라는 오해... 그런 사실을 모른 채 사랑을 이룬 이들은 어쨌든 서로를 좋은 쪽으로 이해한 사람들이라고, 스무 살의 나는 생각했었다. 결국 내게 주어진 행운이 있다면 바로 그것이었다 .그런 서로의 이해가, 오해였음을 깨닫지 않아도 좋았다는 것... 해서 서로가 이해한 서로를 영원히 간직할 수 있었다는 것 .. 두 달이건 석 달이건, 아니 언제까지고 찾아오는 사람도 없는 거예요. 할아버지 정도.. 2012. 3. 17.
누런 강 배 한 척 _ 박민규 굳이 이렇게 좋아야 할까 생각이 들 만큼이나 화사하고, 화사한 날씨였다. 네 개의 가시오가피 박수가, 그것을 든 한 사내의 뒷모습이 화사한 봄 속으로 사라져간다. 황사가 걷힌 하늘을 올려보며, 그래서 잘 왔다고 나는 생각을 한 것이다. 더없이 가벼이 화단에선가, 가로수에선가 꽃잎 몇장 떨어 진다, 떨어졌다. 왜 인생에선 낙법이 통하지 않는 것인가. 아들이, 그래서 아내의 전부가 되었다. 절로 이기적이고 의타심이 강한 인간으로 자라왔고, 지금도 그러하다. 내 책임이다. 아니, 누구의 책임인지 알 수 없다. 이제 더 줄 것도 없지만, 아니, 그래도 겨우 집 한 채가 남았지만, 더는 주지 않겠다고 나는 결심했다. 나에게도, 내 인생이란 게 있는 것이다. 치매를 앓는 아내에게도 아내의 인생이 있다. 집은 우리의.. 2012. 2. 7.
근처 _ 박민규 잘 살고 있어. 아침엔 민과장의 전화를 받았다. 10시쯤 눈을 떴으니 민과장에겐 아침회의를 끝내고 난 오전이었을 것이다. 어떻게 지내냐는 말에... 그렇게밖에는 답을 할 수 없었다. 나도 얘기는 들었는데 ... 하고 말을 흐렸으므로 그렇지 뭐, 내가 말끝을 이어야 했다. 또 무슨 얘길 나눴던가... 잘 아는 목사님이 계시다는 얘길 들었다, 들었으므로 나는 고맙다고 말해주었다. 고맙다, 고마운 일이다. 그리고 또 각자의 삶을 살아야 한다. 어떤 통증도 없이 모처럼 깊은 잠을 잤다는 생각이다. 차를 끓이고, 몇장의 시디를 뒤져 바흐를 듣고, 세수를 하고, 카메라의 배터리를 교체하고... 했다. 분명 잘, 살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는 생활이다. 돌이켜보면 옴몸을 파닥이던 붕어의 모습이 떠오른다. 내게도 그런 .. 2012. 2. 7.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_ 박민규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대통령의 비자금, 재벌과 대기업, 부동산 투기와 큰손, 인천범원의 김판사와 좋은 대학을 나왔기에 일찍 부장이 된 조부장... 돌이켜 보면 누구나 야망을 가지고 살았던 시절이었다. 도다리도, 대통령도, 세상의 소년들도, 그리고 나도. 불을 껐다. 멀리서 한석봉의 어머니가 떡을 써는 소리가 들려왔다. 또 누군가는 콧구멍에 파를 끼우며 졸음을 쫒고 있겟지. 도무지 야망을 가지지 않고서는 불안해서 못살겠단 생각을 하면서 나는 잤다. 나는 비로소 그런 뉴스들에 무신경해져가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성격이 원활하고 낙천적이어서가 아니라, 이 넓고 넓은 우주를 유랑하다 보니 우주의 운명이란 것은 이미 정해져 있고, 그것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는 나름대로의 철학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2012. 1.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