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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11

기억할 만한 지나침 _ 김연수 그녀의 엄마는 자신이 착한 여자였기 때문에 인생을 실패했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그녀는 엄마의 특이한 가정 교육, 그러니까 싸지도 않은 여성적인 옷들을 사들여 그녀의 옷장에 채워넣거나, 적이 안감한 색상의 아이라이너 따위를 자기 몰래 콘솔 위에 올려두는 일들보다도 엄마의 말투나 행동거지에서 드러나는 실패의 느낌에 딸로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그렇다고 그게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거나 엄마의 유난스런 관심이 부담스럽다는 얘기는 아니었고, 다만 그런 과정을 거쳐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는 뜻이다. 그게 누구든 그녀는 그들이 원하는 어떤 사람이라도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미 깨닫고 있었다. 사람들이 그녀에게 원하는 것은 지극히 단순한 것들이었다. 더 아름다워지기.. 2012. 3. 1.
근처 _ 박민규 잘 살고 있어. 아침엔 민과장의 전화를 받았다. 10시쯤 눈을 떴으니 민과장에겐 아침회의를 끝내고 난 오전이었을 것이다. 어떻게 지내냐는 말에... 그렇게밖에는 답을 할 수 없었다. 나도 얘기는 들었는데 ... 하고 말을 흐렸으므로 그렇지 뭐, 내가 말끝을 이어야 했다. 또 무슨 얘길 나눴던가... 잘 아는 목사님이 계시다는 얘길 들었다, 들었으므로 나는 고맙다고 말해주었다. 고맙다, 고마운 일이다. 그리고 또 각자의 삶을 살아야 한다. 어떤 통증도 없이 모처럼 깊은 잠을 잤다는 생각이다. 차를 끓이고, 몇장의 시디를 뒤져 바흐를 듣고, 세수를 하고, 카메라의 배터리를 교체하고... 했다. 분명 잘, 살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는 생활이다. 돌이켜보면 옴몸을 파닥이던 붕어의 모습이 떠오른다. 내게도 그런 .. 2012. 2. 7.
7번 국도 _ 김연수 네 멋대로 하라 네 멋대로 하라 그것이 다만 꿈이든 삶이든, 우리의 이름을 부르고 우리를 한낱 바람의 자식으로 키운 모든 은혜들을 네 멋대로 하라 다만 꿈이든 삶이든 사랑하는 섬이든, 변심한 숲이든 뭐든 인더스트리어/테크노 그룹 '기형도'의 신곡 의 가사중. 매혹적인 것들은 아직 오지 않은 것들이며 이미 온 것들은 지루하다. 우리도 이제 어른이 되고 우리가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았던 어떤 것으로 바뀌어 가겠지. 그러면 자신의 모습에 많이 슬프겠지.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 속에서 희망을 찾는 자들이 불행한 것은 이제 과거는 우리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과거는 내 푸르렀던 스무 살 그 무렵의 나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7번 국도는 아직 오지 않았던 것, 내가 바로 지금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 내게.. 2012. 1.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