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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 _ 박민규

by yoni_k 2012. 2. 7.










잘 살고 있어. 아침엔 민과장의 전화를 받았다. 10시쯤 눈을 떴으니 민과장에겐 아침회의를 끝내고 난 오전이었을 것이다. 어떻게 지내냐는 말에... 그렇게밖에는 답을 할 수 없었다. 나도 얘기는 들었는데 ... 하고 말을 흐렸으므로 그렇지 뭐, 내가 말끝을 이어야 했다. 또 무슨 얘길 나눴던가... 잘 아는 목사님이 계시다는 얘길 들었다, 들었으므로 나는 고맙다고 말해주었다. 고맙다, 고마운 일이다. 그리고 또 각자의 삶을 살아야 한다. 어떤 통증도 없이 모처럼 깊은 잠을 잤다는 생각이다. 차를 끓이고, 몇장의 시디를 뒤져 바흐를 듣고, 세수를 하고, 카메라의 배터리를 교체하고... 했다. 분명 잘, 살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는 생활이다. 돌이켜보면  

























옴몸을 파닥이던 붕어의 모습이 떠오른다. 내게도 그런 시간이 있었다. 그 몸부림에 대해선 말하고 싶지 않다. 고통과 진통, 투약과 불면... 스스로의 혈관을 찾아 링거를 꽂는 일상에 대해선 말하고 싶지 않다. 나는 살아 있는 내 모습을 기억하고 싶다. 바람이 분다. 나는 지금 숨을 쉬고 있다. 멀리서는 보이지 않을 만큼 담담한 모습이겠지만, 더없이 풍만한 감정으로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다. 한 폭의 그림을 그리는 마음으로 연두와 초록, 노랑의 저 색채를 음미하고 기억하려 한다. 모든 물감을 섞으면 검정이 되듯 소소한 삶의 순간들도 결국 죽음으로 물들게 될 것이다. 물이 흐른다.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혹이 넓고 싶은 삶이 흐르고 있다. 나는 기쁘고, 기쁘지도 않다. 나는 슬픈데 슬픈 것만도 아니다. 나는 화가 나지만 어째서 화가 나는지 모르겠다. 나는 아프지만 아프지 않은 부분도 있다. 나는 즐겁고, 실은 즐거울 하등의 이유가 없다. 모르겠다. 느끼는 모든 감정을 추스르고 섞으면 결국 체념이 된다. 그것은 캄캄하고, 끝없이 깊고, 풍부하다. 인간이 이를 곳은



결국 체념이다. 


















































기적을 믿을 만큼 나는 어리석지 않았고, 이제 와 신앙을 가질 만큼 영민한 성격도 못 되었다. 그저 돌아갈 곳이 모북밖에 없었고, 무엇보다 나는 혼자이고 싶었다. 여섯 개 정도 ... 개인 파일이 담긴 폴더를 휴지통에 삭제하던 순간이 떠오른다. 삶의 대부분이라 믿었던 직장생활이 그걸로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저기 ... 이런 말 하긴 뭣하지만 말일세... 하고 부장은 부탁했었다. 일주일 정도라도.. 어떻게 인수인계를 ... 살아온 삶에 특별한 의미가 없다는 느낌이 그래서 들었다. 천수를 누린다 해도 어ㅉ면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딸캌 이곳의 문을 여는 순간 그때도 아버지의 말이 새삼스레 떠올랐었다. 넌 저 방에서 기다리고 있거라 ... 어쩌면 그 말은 아버지의 마지막 인수인계가 아니었을까. 인간은 결국 각자의 죽음을 기다리기 위해 견디고 견뎌온 존재들이 아니었을까. 그 방에 짐을 풀고서 나는 청소를 시작했었다. 그때의 젖은 물기가 아직 손에 그대로 남은 느낌이다. 처연한 달이
 
 스스로를 깎고 있는 깊은 밤이다.





































나는 혼자다. 혼자인 것이다. 찾아 나설 아내도 없다. 설사 네 명의 자식이 있다 해도 나는 혼자일 것이다. 이 얼마나 다행인 일인가 ... 문득 혼자서, 혼자를 위로하는 순간이다. 삶도 죽음도 간단하고 식상하다. 이 삶이 아무것도 아니란 걸, 스스로가 아무것도 아니란 걸, 이 세계가 누구의 것도 아니란 걸, 나는 그저 떠돌며 시간을 보냈을 뿐이란 사실을 나는 혼자 느끼고 또 느낀다. 나는 무엇인가? 이쪽은 삶 , 이쪽은 죽음 ... 나는 비로소 흔들림을 멈춘 나침반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평생을

<나>의 근처를 배회한 인간일 뿐이다. 






















하루는 덧없이 짧거나
더없이 길었다.
그리고 자주
순임이 찾아왔다.
















아무 일 없는 순간이
아무런 일 없는 공간 위에 머물러 있다.

언뜻, 그렇다. 나도 언뜻 이곳에 머물렀지 않았던가. 지긋이 책을 집어들면서도 마치 죽은 이ㅣ처럼 나는 속으로 중얼거린다. 빗줄기가 그리는 크고 작은 동심원이 무수한 연잎이 되어 어디론가 흘러간다. 기쁜 일도 ... 슬픈 일도 아니다. 아우렐리우스는 또 뭐라고 얘길 했을까. 책을 펼치자 한 장의 사진이 깃들어 있다. 환하게 웃고 있는 낮선 얼굴을 바라보며 나는 오오래 그 남자의 삶에 대해 생각해본다. 그는 어디 있었을까. 그리고 그는 어디로 가는 걸까. 아마도 이
근처일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