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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7번 국도 _ 김연수

by yoni_k 2012. 1. 30.



네 멋대로 하라 네 멋대로 하라 그것이
다만 꿈이든 삶이든, 우리의 이름을 부르고
우리를 한낱 바람의 자식으로 키운 모든 은혜들을
네 멋대로 하라 다만 꿈이든 삶이든 사랑하는
섬이든, 변심한 숲이든 뭐든

인더스트리어/테크노 그룹 '기형도'의 신곡 <우리세대>의 가사중.







매혹적인 것들은 아직 오지 않은 것들이며 이미 온 것들은 지루하다. 우리도 이제 어른이 되고 우리가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았던 어떤 것으로 바뀌어 가겠지. 그러면 자신의 모습에 많이 슬프겠지.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 속에서 희망을 찾는 자들이 불행한 것은 이제 과거는 우리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과거는 내 푸르렀던 스무 살 그 무렵의 나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7번 국도는 아직 오지 않았던 것, 내가 바로 지금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 내게 매혹을 던져주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그해 여름, 모두 3만cc의 생맥주와 수십 마리의 말린 바다생물을 씹어먹은 뒤에 7번 국도로 자전거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마술로의 여행, 미지로의 여행, 혹은 희망 속으로의 여행.





좌석 버스가 빠앙, 소리내며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갔다. 아무리 더운 여름 햇살이라고 하더라도 자전거를 타고 달려가는 동안에는 덥지 않다. 그처럼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라 해도 우리가 달려가는 한은 절대로 절망적이지 않다. 우리는 달려가면서 영원히 사랑하고 사랑하면서 영원히 달려가야 한다.












 댕겨가는 그것들이 가을 저녁 노을에 찍히는 감나무 가지의 형상을 볼 때처럼 너무나 아쉬워 넋을 놓고 언덕에 앉아 있었던 적도 있었다. 사람은 태어나 끝없이 서로 참조하고 서로 연결되는 길 위를 댕겨가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지구와 달처럼 서로 가까워졌다가 태양계 밖으로 쏘아버린 보이저 호처럼 한없이 멀어지기만 하기도 하는 것이다. 
 길이 거대한 도서관과 같은 것이라면, 그리하여 길을 걸아가는 일이 이 세계의 참된 모습을 배우는 것과 같은 것이라면 과연 나는 이 길 위에 오른 이후에 무엇을 배웠을까? 과연 이 세계의 참된 모습을 열람했을까? 하지만 무엇도 알 수없다. 나는 끝없이 서로 참조하고 서로 연결되는 길 위에 서 있을 뿐, 내가 과연 어디에 있는지, 또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다. 수많은 것들, 내가 사랑했던 여자들, 보았던 책들, 들었던 음악들, 먹었던 음식들, 지나갔던 길들은 모두 내 등 뒤에 있다. 그러므로 지금의 나는 아무런 되비침도 없는 유령일 뿐이다. 나의 존재를 되비춰주는 것들은 모두 등뒤에 머물고 있으니.














달려오던 시간에 비해서 스쳐가는 시간은 너무 짧았다. 









쉽없는 변전. 어쩌면 물고기들에게서 7번국도 균이 발견된 것도 그 때문이 아니였을까? 변전하지 않았더라면 삶이 지루했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까지 폭력적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궁 속에서 시간이 멈춰 있었다면. 폭력과 지루, 둘 중에서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에 있어서 우리들은 본능적으로 폭력을 선택해버렸다. 그 결과로 우리들은 수없이 변하는 존재로서의 뭔가가 되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7번국도에 감염되어 항상 뭔가에 의해 격리수용 된 것이다. 











어머니의 자궁에서 시작하여 죽음으로 향하는 그 기나긴 여행을 하는 동안, 삶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지고 죽음의 목소리는 커지고 있었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없었다. 어쩌면 질량보존의 법칙은 생명체 모두에게도 해당 될 것이다. 
 나는 그 나무가 내게 말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나는 저 고양이였어요. 저 하늘이에요. 또 저 의자예요. 나는 그 폐허였고 그 바람, 그 열기였어요. 가장한 모습의 나를 알아보지 못하시나요? 당신은 자기가 인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를 나무라고 여기는 거예요. 대양 속의 소금같이, 허공 속의 외침같이, 사랑 속의 통일같이, 나는 내 모든 겉모양 속에 흩어져 있답니다. 당신이 원하신다면 그 모든 겉모습들은 저녁의 지친 새들이 둥지에 들 듯 제 속으로 들어올 거예요. 고개를 돌리고 순간을 지워버리세요. 생각의 대상을 갖지 말고 생각해보세요. 떨어진 잎사귀가 지신이 썩어 문드러져 다시 새로운 새싹으로 태어날 것을 믿는 것처럼 당신을 그러한 믿음에 가만히 맡겨보세요."



















하지만 길을 따라 추억되는 기억이란 얼마나 황량한가? 우리는 뒤돌아보지 않고 앞으로만 달려왔다. 가끔씩 지나가는 트럭에 돌멩이들이 치이고 나면 아무런 색깔도, 향기도 없는 적만만이 우리를 감싼다. 우리 앞에 펼쳐진 길의 페이지에는 무엇도 적혀 있지 않아 우리는 그저 황망할 따름이다. 우리는 시시각각으로 망각되는 길의 편린들을 따라 걸어가고 있을 뿐, 그 길의 완전한 모습을 보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고해상도 파노라마 필름처럼 우리 앞에 놓여있는 저 길을 믿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까 내가 성당이 있는 뒷산 아주 높은 곳에서 뱀처럼 꾸불꾸불 산등성이를 넘어 어디론가 사라지는 길을 내려다보고 있던 시절에 나는 몇 번이고 희망에 대한 맹세를 했었다. 뱀의 아름다운 무늬처럼 길은 누부셨고 나를 유혹했었다. 뱀의 아름다운 무늬처럼 길은 눈부셨고 나를 유혹했었다. 하지만 정작 길에 던져졌을 때, 내가 읽었던 세계의 나침반들은 모두 기능을 상실했고 온갖 거리의 말들만이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처럼 내 귓바퀴를 괴롭혔었다. 



















어쩌면 우리는 무의미하게 태어나서 무의미하게 살아가다가 결국 무의미하게 죽을지도 모른다. 남는 것은 해골일 뿐이며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고 잘라 말하고 싶은 욕망이 내 몸 안에 가득하다. 이 세계를 부정하고 이 세계의 거죽에 그려진 온갖 형상들을 거부하는 그런 저런 욕망들이여, 그렇게 그냥 내 몸 안에서 머물다 가시라. 
 꿈에서 깨어나면 그곳에 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아닌 다른 뭔가가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환각이었을까? 그렇다면 내가본 것들은, 사랑한 것들은, 희망한 것들은? 어쩌면 희망이라는 것은, 혹은 이 시계라는 것은 끊임없이 돌아가는 자전거 페달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다시 돌아 같은 자리에 오지만, 그곳은 전혀 낮선 곳이다. 그 원의 시계에서 내가 과연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 꿈속에서가 아니라, 이 세계 속에서? 환각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길은 어떠한 물음에도 대답해주지 않는다. 길은 다만 구불구불 이어져 있을 뿐이다. 나는 시시각각으로 죽어가고 있는 생물체에 불과하다. 




















수맣은 사람들이 7번국도를 찾아 떠났고 개중 몇몇은 7번국도에서 죽거나 몇몇은 이렇게 눌러앉아 떠나기 전과 다름없는 삶을 살고 잇는 것이다. 노을 쪽으로 걸어가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비틀스가 노래했고 그가 가고자 했던 7번국도라는 것은 결국 노을이 지는 바로 그 순간처럼 아름답기 그지없는 찰나의 순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영원의 행색을 한 그 찰나의 순간은, 하지만 우리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진으로나, 비석으로나, 봉분으로나 존재하지 이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매순간 단절되는 찰나를 살지 못하고 인과관계의 연속 속에 살게 되었다는 것. 바로 그러한 운명 속에 이미 삶이 지루함이냐, 폭력이냐는 결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뛰어가기만 하면 돼. 이렇게 아무 말 없이 뛰어서 도망가기만 하면 돼. 아무도 우리가 누군지 모를 거야. 우리 따위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아. 걸음을 멈추지 마. 여기서 멈추면 우리는 덜미를 잡힐 거야. 엄청나게 큰 손이 우리 뒷덜미를 잡고 우리를 우리가 아니어도 상관없는 이 세상 속으로 집어던질 거야. 이 세상 따위야 알 게 뭐야. 될 대로 되라지. 그러니 뛰어. 그냥 뛰어. 아무 말 말고 그냥 뛰어.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처럼 말이야.  




















스무 살이나 그 무렵의 기억은 웬일인지 너무나 희미하다. 왜냐하면 나이가 발하는 광채로 인해서 그때 내가 어디에 있었고 무엇을 했었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살펴보려고 해도 잘 보이지 않는 것이다. 















시간은 지루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폭력적이다.


















세상 모든 일은 무엇이든 단 한 가지 사실만 알아두면 된다. 가령 취직을 한다는 것은 돈을 벌기 위한 한 가지 목적 때문이다. 사명감을 가지면서 동시에 돈도 벌 수는 없는 것이다. 



















방부되는 시간이란 늘 쓸쓸하게 마련이고 또 당신이 늘 생각하는 것처럼 그곳에는 희망이란 없어요. 한때는 저도 변화하는 세계를 끔찍하게도 믿었어요. 희망이란 이런 루푸에 있지 않은 것이죠. 하지만 나는 루프로의 유폐를 자청했어요. 희망은 멀고 시계는 침울한 표정으로 시간의 흐름만 지켜보고 있죠. 이제 나는 당신의 뒈져버린 7번국도가 그렇듯이 고양이도 될 수 없고 하늘도, 의자도, 폐허도, 그 바람도, 그 열기도 될 수 없어요. 저는 오직 서연일 뿐이죠. 재현의 기억 속으로 들어간 스물한 살의 저에게는 이제 희망이란 없지만, 저는 행복하답니다. 




















아직 나도 삶이 도대체 어떤 모습인지 확언하지 못하겠어. 한 이백 년 정도가 지나면 이해할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 하지만 인류의 불행은 인간의 수명이 이백 년을 넘지 못한다는 데에 있겠지. 스물다섯 살이 되기 전까지는 이율배반적인 삶에 대해 끊임없이 논리를 세우려고 했었지. 광장히 피곤했어. 낮이고 잠이고 계속 잠을 잤지. 그러다가 어느 날 그런 의지의 선이 뚝 끊어진 거야. 멍하더군. 마치 대관령을 넘어가는 버스 안에서 처럼.














 
하지만 알고 보면 사람들은 모두 무릉계곡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나같이 환한 얼굴 빛내며 꼭 내가 물어보면 금방 대답이라도 해줄 듯 자신 있는 표정으로 토요일 저녁과 일요일 아침, 내가 아는 사람들은 총총히 떠나가는 것이다. 울적한 소도시 변두리와 숨막힌 슬레이트 지붕 아래 찌그러진 생활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제비처럼 잘 우는 어린 딸 손 잡고 늙은 가장은 삼화동행 시내버스를 탄다.  
 무엇을 하는 곳일까? 세상의 숱한 낙원이라는 곳은. 행여 그런 땅에 우리가 찾는 희망의 새가 찔끔찔끔 파란 페인트를 마시며 홀로 비틀거리고 있는지, 아니면 순은의 뱀무리로 모여 지난 겨울에 잃었던 사랑이 잔뜩 고개 쳐들고 있을까?
 분명 언제부터인가 나도 무릉계곡 가는 길을 익히고 있었던 것 같은데. 한밤에도 두 눈 뜨고 찾아가는 그 땅에 가면 뭘 하나. 고산족이 태양에게 경배를 바치듯 강 둔덕 따라 늘어선 미루나무 높은 까치집이나 쳐다보며 하품하듯 내가 수천 번 경탄 허락하고 나서 이제 돌아나 갈까 또 어쩔까, 서성이면, 어느새 세월의 두터운 금침 내려와 세상 사람들이 나의 이름을 망각 속에 가두어놓고 그제서야 메마른 모래를 양식으로 힘을 기르며 다시 무릉계곡의 문 열고 그리운 지구로 돌아오기 위해 우리는 이렇게 끈끈한 산바람으로 소리쳐 울어야 하겠지.
 어쨌거나 지금은 행복한 얼굴로 우리 무릉계곡 가고 있는 것이다. 그곳이 무릉계곡이든, 아니든.



















하지만 이곳, 7번국도에는 그 어떤 아버지도 없다. 그곳에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길만이 있을 뿐이다. 길은 우리들의 양식이며 우리들의 집인 것이다. 뜨거운 태양과 달아오른 아스팔트, 그리고 멀리 데워진 공기 속에서 희미하게 흔들리는 도시의 모습. 이런 길 위에서 우리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스스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우리를 비난할 사람이 없다는 것은 곧 우리가 비난할 사람도 없다는 것을 뜻한다. 누구를 비난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 그것이 재현이 7번국도에서 배운 것이다.




















"사람이 늙으면 의욕은 없어지고 쓸데없이 예감만 들어 맞을 때가 많아요. 그러다 보면 세상 이치가 다 눈에 보이고 그 즈음에는 과연 내가 살아온 인생이 옳았는가, 하는 생각을 할 때가 많죠. 아직 젊은이들은 그런 것들에 대해서는 알지 못할 것이고 또 알아야 할 필요도 없어요. 인생은 단 한 번 살아가는 것이고 그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옳다는 신념에 의해서만 옳을 테니까. 하지만 때때로 아주 많은 중에 하나 정도는 잘못된 인생이 나오는 수가 잇는데, 그런 잘못된 인생중의 하나가 바로 나의 삶이었어요. 평생을 나는 어떤 의미를 추구하고 살아왓어요. 마치 젊은이들처럼 말이야. 그 일을 나는 정말 쓸데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었지. 하지만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의미라는 것은 죽어 있는 의미와 같은 것이에요. 마치 서로 연결되지 않는 길은 죽은 길이라고 여길 수 있듯이 말이에요. 의사소통이 되지 않으면 누군가에게는 의미있는 일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죽음을 부르는 일이 되는 것이죠. 이 늙은이는 그 단순한 사실을 이렇게 나이가 들고서야 알게 된 거야. 내가 쓸데없이 보내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없는 편지를 배달하는 일을 자청하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서 비롯된 거예요. 이러한 쓸데 없음이 왠지 나에게는 위로가 되거든."





















한때는 이 세계라는 것이 결코 나 없이는 돌아가지 않는 것이라고 믿었었다. 아니, 그렇다기보다는 내가 더하는 그 힘으로 이세계는 움직인다고 믿었었다. 당신도 그렇게 믿었듯이, 우리들 모두가 그렇게 믿었듯이. 그것을 우리는 희망이라고 말했었다. 세계의 중심에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서는 것. 하지만 그런 시절은 모두 가 버렸다. 뒈져버린 7번국도처럼 우리들은 이미 모두 죽어버렸다. 뒈져버린 7번국도에게는 내가 물을 주지만, 이미 죽어버린 우리들에게는 누가 물을 주는 것일까? 시절들. 낙오한 시절들만이 우리들 발 밑에 잎사귀처럼 떨어져 있다. 사랑했던 날들은 이미 우리의 것이 아니다. 



























"마울로 빼로찌라는 가수 알아?"
세희는 고개를 저었다.
"그 사람, 이탈리아 깐따또레 가수인데, 깐따또레라는 것은 자기가 노래를 만들고 자기가 그 노래를 부르는 사람을 말해. 항상 절망적인 노래만 불러서 꽤나 환영을 받았나봐. 가령 <자살>이라든가 하는 제목의 노래들이지. 그런데 어느날 이 사람이 느닷없이 <너와 함께 늙어갈 수 있다면>이라는 노래를 발표한 거야. 왜 그랬는지 알아?"

"사랑에 빠진 거야. 사라에 빠진 것 하나로 모든 것이 바뀌었어. <죽음에 이르는 계절>도, <자살>도, <공포>도 모두 <너와 함께 늙어갈 수 있다면>으로 바뀐 거야."

"어쩌면 산다는 것은 아주 간단한 일일지도 몰라. 그렇게 어렵지도 않고, 그렇게 힘들지도 않을 거야. 내가 너를 안지는 얼마 되지 않지만, 내가 너를 잘 모를 것이라는 생각 만큼이나 또 너를 잘 알 수 있을 것 같아. 우리도 팬들의 기대를 무시하고 예쁘게 변졀한 뻬로찌가 노래한 것처럼 아주 오랫동안 함께 늙어갈 수 있을까? 세월이 흐르고 또 흐르고 나뭇잎들이 나고 떨어지고 꽃이 피고 지고, 그렇게 오랫동안 우리들도 함께 늙어 그 노래 가사처럼 양철 지붕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함께 들을 수 있을까?"




















아주 오랫동안 저는 아무런 현실성 없이 살아왔던 것이죠. 나 스스로 만든 인공낙원, 즉 아름다운 추억이나 기억 속에서 머무르면서 나는 점점 더 병들어갔을 뿐이에요. 그곳에 희망이라고는 없기 때문에(왜냐하면 더이상 바랄 것이 없기 때문에) 나는 현실에서는 점점 더 죽어가면서도 인공낙원에서는 나오지 않으려고 했었죠.



















회색 해는 넘어가고 밤과 별이 머리 위로 떠오르면 고개 들어 노래해야만이 느낄  수 있는 노래를 하지 언제부터 우린 이다지도 막연히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은 노래를 불러야 햇을까 모두 다 이런 생각 한번쯤은 해봤겠지 그러나 너나 나나 우린 해도 달도 별로 가지만 가만히 꿈만 꾸며 모든 걸 잊곤 하지 우리는 무엇을 잊어가는 걸까   우리는 무엇을 잊어가는 걸까  우리는 무엇을 찾고 무엇을 버릴까 우리는 무얼 감추고 있을까 우리는 무얼 보여줄 수 있을까






















청춘은 길다.
청춘은 길다.
오랫동안 나는 그 두 마디를 되뇌었다. 그러나 청춘은 그다지 길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누구도 영원히 기억할 수는 없다. 사람이 죽으면 별이 된다는 말은, 그러니까 영원히 기억할 수 없는 그 사람을 별들의 무리 속으로 보내어 그 별들의 무리 안에서 우리가 영원히 기억하지 않아도 외롭지 않게 만들려는 생각의 소산일 것이다. 어쩌면 서연은 외롭지 않을지도 모른다. 외로운 것은 재현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서연이겠지.





















"누구보다도 세희를 사랑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상처받지도 않을 거야. 그렇게 되면 누군가를 위해서 인생을 살 필요도 없고 누군가를 대신해 책임질 필요도 없을 거야. 이제 나는 그 모든 것을 잊어버릴 수 있어. 더이상 기억하지 않아도 괜찮은 거야. 더이상 아버지를 기억하지 않고 서연을 기억하지 않고 7번국도씨를 기억하지 않고 비틀즈를 기억하지 않고 불꽃놀이를 기억하지 않을 수 있어. 그런 망각이 이제는 나를 자유롭게 해."
안녕, 이제 모두 끝이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길을 떠날 것이고 그 길은 우리가 예전에 알지 못하던, 전혀 낯선 길일 것이다. 그곳을 따라 어딘가에 우리가 찾던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