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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시집] 작은 기도_이해인

by yoni_k 2012. 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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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의 말


고통을 그렇게

낭만적으로 말하면

나는 슬퍼요


필 때도 아프고

질 때도 아파요


당신이 나를 자꾸

바라보면 부끄럽고

떠나가면 서운하고

나도 내 마음을 

모를 때가 더 많아

미안하고 미안해요


삶은 늘 신기하고

배울 게 많아

울다가도 웃지요


예쁘다고 말해주는

당신이 곁에 있어

행복하고 고마워요


앉아서도 멀리 갈게요

노래를 멈추지 않는 삶으로

겸손한 향기가 될게요





*

어떤 행복



하늘이 바다인지

바다가 하늘인지


기쁨이 슬픔인지

슬픔이 기쁨인지


삶이 죽음인지

죽음이 삶인지


꿈이 생시인지

생시가 꿈인지


밤이 낮인지

낮이 밤인지


문득문득 분간을

못할 때가 있어요


그런데 

분간을 잘 못하는

이런 것들이

별로 문제가 되지 않네요

그냥 행복하네요


이런 행복을

무어라고 해야할지

그냥

이름 없는 행복이라고 말할래요








*

꽃을 보고 오렴



네가 울고 싶으면

꽃을 보아라


웃고 싶어도

꽃을 보아라


늘 너와 함께 할 

준비가 되어 있는 꽃


꽃은 아름다운 그만큼

맘씨도 곱단다

변덕이 없어

사귈 만하단다


네가 

나를 만나러 오기 전

꽃부터 먼저 만나고 오렴


그럼 우리는 절대로

싸우지 않을 거다

누구의 험담도 하지 않고

내내 고운 이야기만 할 거다






*

작은 노래 1



마음은 고요하게!

눈길은 온유하게!

생활은 단순하게!


날마다 새롭게

다짐을 해보지만

쉽게 방향을 잃는 내 마음이

내 마음에 안 들 때가 있습니다

작은 결심도 실천 못하는

나의 삶이 미울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눈을 크게 뜨고

열심히 길을 가면

감사의 노래를 머추지 않으면

하얀 연꽃을 닮은 희망 한 송이

어느 날 슬며시 피어오릅니다

삶이 다시 예뻐지기 시작합니다








*

힘든 위로



오래 아픈 친구에게 

오늘도 전화를 걸어

"어때?"

"괜찮아?"

"건강해야지"

늘 같은 말

반복이고 

그쪽에선

아무 말이 없습니다


괜찮다 하면 거짓말이고

아프다 하면

내가 걱정할까 봐

성겁게 헛웃음만 웃는 그에게


나는 그냥

날씨 이야기만 하닥

다른 사람 이야기만 하다가


슬그머니 작별인사를 하고 맙니다


오늘도

내 마음과 달리

위로의 말은

침묵 속에 숨었습니다.













*

고백


꿈에는

당신을 잊고 싶은데

자꾸만 더 생각나서

행복합니다


생시에는 더 많이

당신을 기억하고 싶은데

자꾸만 잊혀져서

걱정입니다


이래도 될까요?







*

오늘도 십자가 앞에 서면



기쁠 때에도 슬플 때에도 

성당의 십자가 앞에 서면

예기치 않은 기쁨과 평화가

피어오릅니다


말을 하면 향기가 달아날까 봐

안으로 밖으로 고요히 침묵하면

오늘도 심자가 앞에서

사랑을 배웁니다



날마다 이마에 가슴에 십자가를 긋고

십자 목걸이와 십자 반지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정작은 잊고 살았던 십자가의 의미


슬픔의 가시가 박힌 삶의 무게를

두려워 않고 받아 안을 수 있는 

용기가 생깁니다


십자가에 숨어 있는

놀라운 빛의 기도

사랑의 승리로

날마다 새롭게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그 누구를 위로하고 싶을 때

그 누구로부터 위로 받고 싶을 때

성당의 십자가 앞에 서면

죽음의 눈물도 부활의 웃음으로 바뀌는

기적 같은 은총이여


죽음을 뛰어넘는 사랑의 어리석음을 

몸으로 가르친 예수 그분이 계시기에

절망 속에서도 빛나는 삶의 희망이여

 








*

내 기도의 말은



수화기를 들고

긴 말 안 해도

금방 마음이 통하는

연인들의 통화처럼


너무 오래된

내 기도의 말은

단순하고 따스하다


뜨겁지 않아도

두렵지 않다


끊고 나면

늘 아쉬움이 

가슴에 남는 통화처럼

일생을 되풀이하는

내 기도의 말 또한

부족하고 안타까운


하나의 그리움일 뿐
끝없는 목마름일 뿐










*

내 기도의 말은



적어도 하루에 

여섯 번은 감사하자고

예쁜 공책에 적었다


하늘을보는 것

바다를 보는 것

숲을 보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기쁨이라고

그래서 새롭게

노래하자고...


먼길을 함께 갈 벗이 있음은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기쁜 일이 있으면 

기뻐서 감사하고

슬픈 일이 있으면 

슬픔 중에도 감사하자고

그러면 다시 새 힘이 생긴다고


내 마음의 공책에 오늘도 다시 쓴다

 






*

내 기도의 말은



감사만이

꽃길입니다


누구도 다치지 않고

걸어가는 향기 나는 길입니다


감사만이 

보석입니다


슬프로 힘들 때도 감사할 수 있으면

삶은 어느 순간

보석으로 빛납니다


감사만이 

기도입니다


기도 한 줄 외우지 못해도

그저

고맙다 고맙다

되풀이하다 보면


어느날

삶 자체가 

기도의 강으로 흘러

가만히 눈물 흘리는 자신을 

보며 감동하게 됩니다







*

가을편지2




떠나면서 머무는

흰 구름인가요

머물면서 떠나는

바람인가요


오늘도 나는

편지를 쓰지 못합니다

내가 그대에게

하고 싶은 모든 말들이

가을 속에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오래 오래

가을 속에 숨어

사랑할 게요







*

날마다 웃으며

하늘을보고

빗소리도 들어요


우리 함께

시를 읊어요


_ 느티나무가 나에게 中











*

화해의 손을 내밀고

고마움에 할 말을 잊은


나의 눈물도 

동그랗게 반짝이네


말을 많이 해서

죄를 많이 지었던 날들

잠시 잊어버리고

맑음으로 맑음으로

깊어지고 싶으면

오늘도 고요히

침묵이란 우물 앞에 서자


_침묵 中









*

어떤 죽은 이의 말


이제 

난 어디에도 없다


사랑하는 너의 가슴속에

한 점 추억으로 박혀 있을 뿐

다시는 네게 갈 수가 없다


숨가쁘던 고통의 절정에서

아래로 아래로

절대 침묵으로 분해되어

떠나온 나


그래도 사라지지 않았다고

너는 믿고 싶겠지


먼저 가서 미안하다고

안녕이라고

말할 틈도 없이 왔지만


너무 원망하지 말아다오


세월이 가도 멈추지 않는 너의 슬픔은

나에게도 괴로움이야


힘들더라도 이젠

나를 잊어야지


나를 놓아주어야

나도 편히 쉴 수 있을 것 같아


진정 사랑했어, 너를

지금도 이것이

나의 마지막 말이야



*

송년 엽서


하늘에서

별똥별 한 개 떨어지듯

나뭇잎에 

바람 한 번 스쳐가듯


빨리 왔던 시간들은

빨리도 떠나가지요?

나이 들수록

시간은 더 빨리 간다고

내게 말했던 벗이여


어서 잊을 것은 잊ㄱ고

용서할 것은 용서하며

그리운 이들을 만나야겠어요


목숨까지 떨어지기 전

미루지 않고 사랑하는 일 


그것만이 중요하다고

내게 말했던 벗이여


눈길은 고요하게

마음은 뜨겁게 

아름다운 삶을


오늘이 마지막인 듯이

충실히 살다보면


첫새벽의 기쁨이

새해에도 항상 

우리 길을 밝혀주겠지요?




*

후회


내일은 

나에게 없다고 생각하며

오늘이 마지막인 듯이

모든 것을 정리해야지


사람들에겐 

해지지 전에

한 톨 미움도

남겨두지 말아야지


찾아오는 이들에겐

항상 처음인 듯

지극한 사랑으로 대해야지


잠은 줄이고

기도 시간을 늘려야지


늘 결심만 하다

끝나는 게

벌써 몇 년째인지


하루가 가고

한숨 쉬는 어리석음


후회하고도

거듭나지 못하는

나의 미련함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