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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누런 강 배 한 척 _ 박민규

by yoni_k 2012. 2. 7.







굳이 이렇게 좋아야 할까 생각이 들 만큼이나 화사하고, 화사한 날씨였다. 네 개의 가시오가피 박수가, 그것을 든 한 사내의 뒷모습이 화사한 봄 속으로 사라져간다. 황사가 걷힌 하늘을 올려보며, 그래서 잘 왔다고 나는 생각을 한 것이다. 더없이 가벼이

화단에선가, 가로수에선가

꽃잎 몇장 떨어

진다, 떨어졌다. 왜 인생에선 낙법이 통하지 않는 것인가.
















아들이, 그래서 아내의 전부가 되었다. 절로 이기적이고 의타심이 강한 인간으로 자라왔고, 지금도 그러하다. 내 책임이다. 아니, 누구의 책임인지 알 수 없다. 이제 더 줄 것도 없지만, 아니, 그래도 겨우 집 한 채가 남았지만, 더는 주지 않겠다고 나는 결심했다. 나에게도, 내 인생이란 게 있는 것이다. 치매를 앓는 아내에게도 아내의 인생이 있다. 집은 우리의 노년을 위해 쓰여야 한다. 잘 먹었다. 자리를 일어선 나는 주섬주섬 양복을 챙겨 입었다. 여보, 갑시다. 
















 더는 
 살고 싶지 않은 것이다. 견디기 힘든 것은 고통이나 불편함이 아니다. 자식에게서 받는 소외감이나 배신감도 아니다. 이제 인생에 대해 아무것도 궁금하지 않은데, 이런 하루하루를 보내며 삼십년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소소하고 뻔한, 괴롭고 슬픈 하루하루를 똑같은 속도로 견뎌야 하는 것이다. 인생을 알고 나면, 인생을 살아갈 힘을 잃게 된다. 몰라서 고생을 견디고, 몰라서 사랑을 하고, 몰라서 자식에 연연하고, 몰라서 열심히 살아가느 ㄴ것이다. 그리고 어디로 가는 걸까?

 인간이란
 
 천국에 들어가기엔 너무 민망하고 지옥에 떨어지기엔 너무 억울한 존재들이다. 실은 누구라도, 갈 곳이 없다는 얘기다. 연명(延命)의 불을 끄고 나면 모든 것이 선명해 진다.
















단 한번이라고 삶을 즐긴 후 나는 아내와 함께 죽고 싶었다. 하마 아내가 여행을 할 수 있을 때, 차마 아내의 영혼이 그것을 기억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출발하기 전날밤의 달은 인생에서 본 가장 크고, 둥글고, 눈부신 달이었다. 잠든 아내의 얼굴이, 그래서 부시고 환하게 다가왔다. 아내의 인생은 어떤 것이었을까. 미안하고 미안하고 미안한 마음이 달의 인력에 끌린 물결처럼 꿈틀거렸다. 젖은 모래를 쓸고 가는 밤의 물결처럼, 나는 말없이 아내의 머릿결을 쓰다듬었다. 꿈인 듯, 혹은 아직은 삶 속인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