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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m

추억의 힘줄은 불수의근(不隨意筋)이니 _ 황동규

by yoni_k 2014. 6. 6.



왜 아버님 추억은

마지막 부분만 떠오르는지 

보청기 낀 귀에 손바닥 오므려 대시던 얼굴만 떠오르는지.


새벽 3시 잠 속에서 기어 나와 집을 떠 

아 아직 인간이 배 매는 자리 마음에 떠오르지 않던 곳 백령도

매듭 하나 지으려고 인천 부두에서 배에 오를 때부터 이불솜처럼 끼는 안개,

가을비 한 차례 뿌려도 시계 30미터의 안개,

하늘과 바다가 다섯 시간 동안 완강하게 사라졌다.

이 속에서 예수와 불타가 만나면

모르는 사이에 서로 구면이 되리라.


초행길, 사람 무서워 않고 달려드는 갈매기와 

해풍에 키 줄어든 어눌한 황국(黃菊) 뿐.

꽃 내음에 빠진 듯 일행에 뒤쳐져

자꾸 따라오는 늙은 애완견 같은 추억을

황국 속에 남몰래 얽어 놓고


만취해 생각 필름 끊긴 하룻밤을 보내고

안개 속에 고깃배들 모여 서로 낮은 소리 주고받는 섬을 떠나

다시 바다를 건너왔다.


다음날 아침

옆에 아버님 추억이 누워 있었다.

왜 계속 한창때 모습이 아니고

마지막 무렵 초췌한 모습인지,

그렇게 힘들게 말하려다 말하려다 그냥 두시는 모습인지,

귀 기울여도 숨소리 제대로 들리지 않고.

한창때 모습은 황국 속에 얽혀 

가을 안개 속 어디에 쓰러져 가쁜 숨 쉬고 있는지.

손바닥 오므려 귀에 댄다.

바다 물 흐름 잠시 멈추고

놋술잔 하나 눈 껌뻑이며 가라앉는다.

보이지 않는 게 구멍들이 꾸룩꾸룩댄다.


추억의 힘줄은 불수의근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