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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시집] 작은 위로_이해인

by yoni_k 2012. 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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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고 싶다는 말은




생전 처음 듣는 말처럼
오늘은 이 말이 새롭다

보고 싶은데....

비오는 날의 첼로 소리 같기도 하고
맑은 날의 피아노 소리 같기도 한
너의 목소리

들을 때마다
노래가 되는 말
평생을 들어도
가슴이 뛰는 말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 감칠맛 나는
네 말 속에 들어 있는
평범하지만 깊디깊은
그리움의 바다

보고 싶은데....

나에게도 
푸른 파도 밀려오고
내 마음에도 다시
새가 날고..





















*
길 위에서

오늘 하루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없어서는 아니 될
하나의 
길이 된다

내게 잠시
환한 불 밝혀주는
사랑의 말들로
다른 이를 통해
내 안에 들어와
고드름으로 얼어붙는 슬픔도

일을 하다 겪게 되는
사소한 갈등과 고민
설명할 수 없는 오해도

살아갈수록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나 자신에 대한 무력함도

내가 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라고
오늘도 몇 번이고 
고개 끄떡이면서
빛을 그리워하는 나

어두울수록
눈물날수록
나는 더
걸음을 빨리 한다













*
비가 전하는 말

....

진정 아름다운 삶이란
떨어져내리는 아픔을
끝까지 견뎌내는 겸손이라고 -

오늘은 나도 이야기하려네
함께 사는 삶이란 힘들어도
서로의 다름을 견디면서
서로를 적셔주는 기쁨이라고 -






















*
기쁨이란 반지는

기쁨은
날마다 내가 새로 만들어
끼고 다니는 풀꽃 반지
누가 눈여겨보지 않아도
소중히 간직하다가
어느 나 누가 내게 달라고 하면
이내 내어주고 다시 만들어 끼지
크고 눈부시지 않아
더욱 아름다워라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많이 나누어 가질수록
그 향기를 더하네
기쁨이란 반지는 









*
여름 노래

엄마의 무릎을 베고
스르르 잠이 드는
여름 한낮

온 세상이 
내 것인 양
행복합니다

꿈에서도
엄마와 둘이서
바닷가를 거닐고
조가비를 줍다가

문득 잠이 깨니
엄마의 무릎은 아직도 
넓고 푸른 바다입니다












*
패랭이꽃 추억



희랍 대리석처럼
희고 깨끗한 얼굴을 가졌던
세레나 언니에게서
열다섯 살의 생이에
처음으로 받았던
한 다발의 패랭이꽃

연분홍 진봉홍 하양
꽃무늬만큼이나
황홀한 꿈을 꾸었던 소녀 시절


누군가에게 
늘 꽃을 건네는 마음으로 살고 싶었다
아니 한 송이의 진짜 꽃이 되고 싶어
수녀원에 왔다

더 많이 사랑하고 싶은 욕심에
가슴이 뛰었다

바람 부는 날
수녀원 뜰에
지천으로 핀 패랭이꽃을 
보고 도 보며
지상에서의 내 고운 날들이
흘러간다


















*
해질녁의 단상


비바람을 견뎌내고
튼튼히 선 한 그루 나무처럼
오늘이란 땅 위에 선 사람도
어쩔 수 없이 슬픔을 견뎌내야
조금씩 철이 드나 보다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을 경험하고
터무니없는 오해도 받고
자신의 모습에 실망도 하면서
어둠의 시간을 보낸 후에야
가볍지 않은 웃음을 웃을 수 잇고
다른 이를 이해하는 일도
좀 더 깊이 있게 할 수 있나 보다





흰 눈 내리는 날
밤새 깨어 있던
겨울나무 한 그루
창을 열고 들어와
내게 말하네

맑게 살려면
가끔은 울어야 하지만
외롭다는 말은
함부로 내뱉지 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