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ook

[시집] 작은 기쁨_이해인

by yoni_k 2012. 5. 21.

"cfile1.uf@1956D2364FBA31DD120340.png"



























*

고백



당신 때문인가요?

딱히 할 말은 없는데

마구 가슴이뛰어요 

딱히 할 일도 없는데

자꾸만 마음이 바빠져요

가시밭길로 보이던 세상이 

갑자기 꽃밭으로 보여요

제가 사랑에 빠진 것 맞지요?

























*

사랑





1


그저 가만히

당신을 생각만 하는데도

내 조그만 심장이

콩쾅거려요

아무도 모르게



당신을 만나러 가는 길은

내 심장이 멎을까보아

걸음을 더 빨리 합니다

아무도 모르게





2


진작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진작 행복하다고 말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지금이라도 알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

작은 기쁨



사랑의 먼 길을 가려면

작은기쁨들과 친해야 하네


아침에 눈을 뜨면

작은 기쁨을 부르고

밤에 눈을 감으며

작은 기쁨을 부르고


자꾸만 부르다 보니

작은 기쁨들은


이제 큰 빛이 되어

나의 내면을 밝히고

커다란 강물이 되어

내 혼을 적시네


내 일생 동안

작은 기쁨이 지어준 

비단 옷을 차려입고

어디든지 가고 싶어

누구라도 만나고 싶어


고맙다고 말하면서

즐겁다고 말하면서

자꾸만 웃어야지


















*

소나기



여럿이 오는데도

쓸쓸해 보입니다

큰 소리 내는데도

외로워 보입니다

위로해주고 싶어

창문을 열었더니

툭! 그쳐버린 하얀 비















*

새를 위하여


기도 시간 내내

창밖으로 새소리가 들려

나도 새소리로 말했습니다


어찌 그리 한결같이 노래할 수 있니?

어찌 그리 가벼울 수 있니?

어찌 그리 먼 길을 갈 수 있니?


우울해지거든 

새소리를 들으러

숲으로 가보세요

새소리를 들으면

설레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삶을 노래하는 기쁨을

숨어서도 사랑하는 법을

욕심 부리지 않는 자유를

떠날 줄 아는 지혜를

새들에게 배우세요


포르르 포르르

새가 날아가는 뒷모습을 보면

말로 표현 못 할 그리움에

자꾸 눈물이 나려 합니다


살아가는 동안은 

우리도 새가 되어요

날개를 접고 쉴 때까진 

땅에서도 하늘을 꿈꾸며

열심히 먼 길을 가는 

아름다운 새가 되어요



























*

보슬비처럼





내고집에

어이없이

한풀 꺾인

하느님의 사랑처럼


조용조용

소근소근

내리는 비


나도 누구를 사랑할 땐

보슬비처럼


마음이 

더 고요하고

약해져야겠다

고와져야겠다

























*

슬픈 사람들에겐



슬픈 사람들에겐

너무 큰 소리로 말하지 말아요

마음의 말을 은은한 빛깔로 만들어

눈으로 전하고

가끔은 손잡아주고

들키지 않게 꾸준히 기도해주어요


슬픈 사람들은

슬픔의 집 속에서만 

숨어 있길 좋아해도

너무 나무라지 말아요

훈계하거나 가르치려 들지 말고

가만히 기다려주는 것도 위로입니다

그가 잠시 웃으면 같이 웃어주고

대책 없이 울면 같이 울어주는 것도

위로입니다

위로에도 인내와 겸손이 필요하다는 걸 

우리 함께 배워가기로 해요


























*

어떤 걱정




울고 싶은데

큰 소리로 울지 못하는 것

웃고 싶은데

큰 소리로 웃지 못하는 것

이것이 병이 될까 걱정이에요


사람에 대해

날카로운 시선을 거두고

이해심도 둥글게 많아져서 좋지만

오히려 사라은 적어지지 않을까 걱정이에요

삶에 대한 메마름과 둔감함을 

거룩한 이탈과 초연함으로 

착각하진 않을까 걱정이에요
























*

시든 꽃




시들었다고

쉽게 버리지 못합니다


시든 꽃잎 위에 얹혀 있는

오래된 시간의 말

추억의 말


할 말은 많지만

참고 있는 꽃들이 

가엾어 보입니다


시든 꽃 버리기 전에

아주 잠시라도

이별의 시간을 가지세요

그리고 

조금은 울어도 좋습니다


이별 앞에서는

늘 슬픔이 먼저이므로

보내는 마음에는

고마움과 미안함이 함께해

자꾸만 눈물이 나려 하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