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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_ 박민규

by yoni_k 2012. 1. 30.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대통령의 비자금, 재벌과 대기업, 부동산 투기와 큰손, 인천범원의 김판사와 좋은 대학을 나왔기에 일찍 부장이 된 조부장... 돌이켜 보면 누구나 야망을 가지고 살았던 시절이었다. 도다리도, 대통령도, 세상의 소년들도, 그리고 나도.


불을 껐다.

멀리서 한석봉의 어머니가 떡을 써는 소리가 들려왔다.

또 누군가는

콧구멍에 파를 끼우며 졸음을 쫒고 있겟지. 

도무지 야망을 가지지 않고서는 불안해서 못살겠단 생각을 하면서 

나는 잤다.








나는 비로소 그런 뉴스들에 무신경해져가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성격이 원활하고 낙천적이어서가 아니라, 이 넓고 넓은 우주를 유랑하다 보니 우주의 운명이란 것은 이미 정해져 있고, 그것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는 나름대로의 철학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삼미와 나는 - 분명 변하지 않는 질량의 '노히트 노런'의 운명을 함께 타고 났으며, 이 우주가 알아주는 '불쌍한 것' 이었다. 눈을 감았다.

 어차피 인생은, 눈을 감으면 꿈이다. 










그날 밤 나는 새로운 사실 한 가지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 - 그저 평범하다고 생각해온 내 인생이 알게 모르게 삼미 슈퍼스타즈와 흡사했던 것처럼, 삼미의 야구 역시 평범하다면 평범하다고 할 수 있는 야구였단 사실이다. 분명 연습도 할 만큼 했고, 안타도 칠 만큼 쳤다. 가끔 홈런도 치고, 삼진도 잡을 만큼 잡았던 야구였다. 즉 지지리도 못하는 야구라기보다는, 그저 평범한 야구를 했다는 쪽이 확실히 더 정확한 표현이다. 다시 말해

 평범한 야구를 했던 삼미 슈퍼스타즈.
 이 얼마나 적확한 표현이란 말인가. 그러나 거기서 파생하는 또 하나의 의문. 확실히 평범한 야구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왜 삼미는 그토록 수치스럽고 치욕적인 팀으로 모두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걸까. 그것은 아마 기록과 순위의 문제 때문이겠지. 라고 나는 생각했으나, 곧 평범한 평범한 야구라면 최하위를 기록할 이유가 없다는 쪽으로 다시 생각의 흐름이 바뀌어갔다. 그렇다. 평범한 야구란 6개의 팀 중에서 3위나 4위를 달리는 팀의 야구를 일컫는 말일 테지. 그럼 왜?

 결론은 프로였다. 













1위 OB 베어스

2위 삼성 라이온즈

3위 MBC 청룡

4위 해태 타이거즈

5위 롯데 자이언츠

6위 삼미 슈퍼스타즈


아무리 봐도 3위와 4위가 그럭저럭 평범한 삶처럼 보이고 6위는 변명의 여지가 없는 최하위의 삶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것이 프로의 세계다. 평범하게 살면 치욕을 겪고, 꽤 노력을 해도 부끄럽긴 마찬가지고, 무진장, 눈코 뜰 새없이 노력해봐야 할 만큼 한 거고, 지랄에 가까운 노력을 해야 '좀 하는데'라는 소리를 듣고, 결국 허리가 부러져 못 일어날 만큼의 노력을 해야 '잘하는데'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꽤 이상한 일이긴 해도 원래 프로의 세계는 이런 것이라고 하니까. 

 결국 문제는 '평범'의 기준에 관한 것이다. 과연 어떤 것이 평범인가? 거기에 대한 논란이 일어나기도 전에, 1980년대 세상은 3위 MBC 청룡과 4위 해태 타이거즈를 하나로 꽉 묶어주는 새로운 용어 하나를 만들어 낸다. 













결국 문제는 내가 삼미 슈퍼스타즈 소속이었던 데서 출발한 것이라고, 16살의 나는 결론을 내렸다. 그랬다, 소속이 문제였다.  소속이 인간의 삶을 바꾼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을 담은 소년이 왜 전철 안에서 조롱으 받는가?

 삼미 슈퍼스타즈의 잠바를 입고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고등학교 동창인 조부장에게 왜 굽실거려야 하는가. 

 삼류 대학을 나왔기 때문이다.

 삼촌이 사는 남동구는 왜 개발이 되지 않는가?

 소속구의 국회위원이 여당소속이 아니기 때문이다.

 소속이 인간의 삶을 바꾼다.

 소속이 인간이 거주할 지층을 바꾸는 것이다. 








원서를 쓰면서, 나는 교육의 목표 역시 '소속'을 가리는 데 있었다는 중요한 비밀을 알게 되었다. 똥배짱이 아닌 이상은,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개발했다간 큰일이 나는 것이다. 눈치를 깠다면 당연히 타고난 저마다의 '소속'부터 개발해야 한다. 참, 개발(啓發)이었지! 






시골 출신의 신입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가능한 한 자신의 촌티와 사투리를 숨기려는 스타일과, 자학을 하듯 그 오버액션을 연출하는 두 부류로 나뉘었다. 물론 더 큰 상처를 받는 쪽은 후자였지만, 클립턴 행성의 인간들이 그런 사실을 알 리 만무했다. 행성인들은 술자리가 심심하다 싶으면 이들의 촌티와 사투리를 부추겼고, 이들은 이미 15:0이라는 심정으로 자학적인 희극과 코미디를 연출하곤 했다. 

'소속'의 슬픔이란 그런 것이다. 이른바 가장 우수하다는 평을 듣는 집단에서도 이 '소속'의 콤플렉스 앞에서 자유로운 인간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사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사실 그래서, 인간은 절대 평등할 수 없다. 











시골 출신의 친구들 중에는 간혹 특이하다 싶을 정도로 집이 가난한 부류가 있었다. 마치 현무암이나 석회암층에서 올라온 듯한 이들은, 살아 있는 화석처럼 세상의 영장류들과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었다. 이들의 <삼미>는 나의 그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어둡고 암울했으며, 훗날 자신의 성향에 따라 입신양명의 길을 걷는 부류와 학생운동의 불꽃으로 산화하는 두 가지 부류로 나뉘었다. 나로서는 양쪽 다 이해가 가는 삶이었다.  










다들! 다들 돼지발정제를 마신 것처럼 땀을 흘리고 숨소리가 거칠어져 있어. 아무래도 놈들이 원하는 건 돈과의 교미가 아닌가 싶어. 이미 마신 이상은... 그 끝을 보지 않을 수 없는 거지. 어쩌면 우리가 대학을 간 것도 다 그걸 마셨기 때문이야. 지금은 느끼지 못해도 좀더 시간이 흐르면 알게 되겠지. 여하튼 땀이... 나고 숨소리가 거칠어질테니까. 내가 왜 이러지? 난 결백해.. 하며 똑같은 짓을 하게 될거라구. 분명해. 그래, 분명 누군가가 우리에게 그걸 먹였어. 우리가 마셔온 물에, 우리가 먹어온 밥에, 우리가 열광하는 야구 경기에, 우리의 부모에게, 이웃에게, 나, 너, 우리, 대한민국에게.... 놈은 차곡차곡 그 약을 타온 거야. 너도 명심해. 그 5분이 지나고 나면, 우리도 어떤 인간이 되어 있을지 몰라...  







청춘은 고장난 탱크와 같다. 

돌이켜 보면, 우리는 누구나 그런 모습으로

내일의 문 앞에 서 있었다. 











길고 긴 겨울방학이 끝나고 3월이 시작되었다. 그런 봄을 두 번 다시는 맞이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그해의 봄에는 정말 많은 일들이 주변에서 일어났다. 진절머리 나는 봄이었다. 이유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다시 인생을 되풀이한다 해도 나는 스무살의 봄을 그때와 똑같이 살게 될 것이라 장담할 수 있다. 이유는 역시 알 수 없다. 돌이켜 봐도 단지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 짐작해봐도 역시 그럴 수 밖에 없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이다.  






왜 그렇게 사냐는 질문은 - 왜 그런 춤을 추고 있냐는 질문과 같은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분명 그것은 어떤 이론이 아니라 하나의 리듬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면 우리는 서로의 삶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게 없었고, 자신의 삶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아는 게 없었다. 왜 그런 춤을 추고 있나요? 네, 이건 왈츠거든요. 




'언제'와 '어디서'가 성립되지 않던 시기였으니 '누가' '무엇을' '어떻게'와 '왜'가 성립되지 않더라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봄이 지나고 지루한 장마가 시작되었다. 장마는 분주하게 널려있던 좀의 발자국들을 하나하나 지워가기 시작했다. 리듬을 타고 리듬을 타고, 나와 그녀가 찍었던 어지러운 발자국들도 장마가 끝나면 모두 지워지겠지, 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렇게, 봄의 왈츠는 끝나가고 있었다. 왜 더 이상 춤을 추지 않나요? 네, 왈츠가 끝났거든요. 





인생은 결국, 결코 잘하리라는 보장도 없이 - 거듭 버틸 수 있는데까지 버티다가 몇 가지의 간단한 항복으로 요약되고 정리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지금도 버티고 있는, 그래서 아무 일 없이 흘러가고 있는 우리의 삶은 - 실은 그래서 기적이다.  







그것은 자판기에 뽑은 커피를 마신 후, 그 바닥에 수북이 남아있는 설탕을 쳐다보는 느낌이었다. 이런 결과를 미리 알았더라면, 우리는 훨씬 더 부드럽고 달콤한 사랑을 나눌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별의 밑바닥에는 그런 후회와 기대감이 깔려 있었다. 

 또 그것은 좌변기의 물을 내리고 난 후, 완전히 내려가지 않고 남아 있는 배설물의 잔해를 쳐다보는 느낌이었다. 이런 결과를 미리 알았다면, 우리는 훨씬 더 간편하고 가벼운 사랑을 나눴을 것이다. 이별의 표면에는 그런 후회와 불쾌함이 떠올라 있었다. 

 그녀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게 없다는 사실을, 그녀와 헤어진 후 나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이상한 일이지만 정말 아무것도 몰랐던 것이다. 그녀 역시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을 게 분명했다. 그녀는 어떤 여자였을까. 우리는 어떤 인간들이었을까.










헤어진다는 것은 - 서로 다른 노선의 전철에 각자의 몸을 싣는 것이다. 스칠 수는 있어도, 만날 수는 없다.  










자본주의를 비판하던 철부지들도, 물신 풍조를 우려하던 몽상가들도, 때가 되면 자신의 손으로

먹고

살아야 한다. 세상을 잘 살기 위해서는 - 긍정적인 사고방식과 좋은 습과, 그리고 사는 건 원래 힘들고 재미없다는 사실에 대한 빠른 인식이 필요하다. 그 세 가지만 제대로 갖춘다면 누구나 이 세계에서  - 먹고, 살 수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물론이다. 









그는 일본으로 건너올 때보다 2개의 가방을 더 지니고 있었다. 물론, 그 짐 속에는 삼미 슈퍼스타즈의 스포츠가방이 어김없이 포함되어 있었다. 

"왜, 정말이지 왜?"

놈이 정색을 하며 대답했다. 


"이건 나의 신앙이야."







"당분간 쉬지 그러니?" 저녁을 먹으며 조성훈이 말했다. 어디서 많이, 가 아니라 아내에게 늘 듣던 말이었다. 농담할 기분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웃기만 했다. 아내와는 달리, 놈은 혀를 끌끌 차며 "어쩌다 ... 프로 따위가 된 거지?" 라는 이상한 말을 덧붙였다.  









"이제 1루로 나가서 쉬란 말이야... 쉬고, 자고, 뒹굴고, 놀란 말이지. 정신을 차리고 제대로 봐. 공을 끝까지 보란 말이야. 물론 심판은 스트라이크를 선언했겠지. 어차피 세상은 한통속이니까 말이야. 제발 더 이상은 속지 마. 거기 놀아나지 말란 말이야. 내가 보기에 분명 그 공은 - 이제 부디 삶을 즐기라고 던져준 '볼'이었어." 












인생은 참으로 이상한 것이다. 힘들다고 생각하면 힘들고, 쉽다고 생각하면 쉽다. 이혼을 하고 실직을 당한 그 시점에서부터, 나는 서서히 인생을 쉽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자 하나씩, 하나씩 할 일들이 생겨났다. 우선 그날 이후 나는 하릴없이 하늘을 쳐다보는 새로운 습관이 생겨났고, 어느새 산보를 하며 하늘을 즐기는 것이 하나의 중요한 일과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하늘을 즐겨가면서 나는 점점 낙천적인 인간으로 변해갔다. 








'어린이에겐 꿈을 젋은이에겐 낭만을!'이란 구호는 사실 '어린이에겐 경쟁을! 젊은이에겐 더 많은 일을!'시키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보면 돼. 우리도 마찬가지였지. 참으로 운 좋게 삼미 슈퍼스타즈를 만나지 못했다면 아마 우리의 삶은 구원받지 못했을 거야. 삼미는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와도 같은 존재지. 그리고 그 프로의 세계에 적응하지 못한 모든 아마추어들을 대표해 그 모진 핍박과 박해를 받았던 거야.  












그 <자신의 야구>가 뭔데?

그건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는다>야. 그것이 바로 삼미가 완성한 <자신의 야구>지. 우승을 목표로 한 다른 팀들로선 절대 완성할 수 없는 - 끊임없고 부단한 <야구를 통한 자기 수양>의 결과야. 


뭐야, 너무 쉽잖아?


틀렸어! 그건 그래서 가장 힘든 <야구>야. 이 <프로의 세계>에서 가장 하기 힘든 <야구>인 것이지. 왜? 이 세계는 언제나 선수들을 유혹하고 있기 때문이야. 어이, 잘하는데. 조금만 더 하면 될 거 같은데? 누구 이번에 어떤 팀으로 옮겨갔대. 연봉이 얼마래. 열심히 해. 넌 연봉이 얼마지? 아냐, 넌 할 수 있어. 그걸 놓치다니! .... 던져! 잡아! 뛰어! 쳐! 빨리, 빨리 달려! 라고 하는 데, 그 속에서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는다>

를 견지한다는 것은 실로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야. 너도 알다시피 모든 선수들의 가슴 속엔 저마다 빛나는 것이 있게 마련이니까. 

또 놈들은 누구나 칠 수 있을 것 같은 공을 끊임없이 던져주곤 해. 또 일부러 바로 코앞에 공을 던져 선수들을 유혹하기도 하지. 













여름은 길고 길었다. 지루하다면 지루하다고 말할 수 있는 나날들이 장마처럼 계속 이어졌고, 그 길고 긴 여름 속에서 - 나는 마치 한마리의 말똥구리처럼 묵묵히 잠을 자고, 쉬고, 생각에 잠기는 등등의 시간들을 끊임없이 반복하며 뭉쳐 나가고 있었다. 그 덩어리는 조금씩, 조금씩 커져갔고, 날이 갈수록 어떤 상호간의 조화를 이루며 둥근 형태의 커다란 구체가 되어갔다. 그것이, 즉 말똥처럼 하찮은 일들로 이루어진 그구체가 재구성된 나의 지구였다. 좌표도, 그 어떤 지명과 소속도 표시되지 않은 칙칙한 지구였지만, 그 전체가 완벽한 '나'로 이루어진 보기 드문 세계였다. 아주 오래전, 나는 좌표와 지명이 분명한 비싸고 화려한 지구 위에서 살았던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보이지 않는 하나의 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하나의 지구다. 












그랬다. 회사를 그만두면 죽을 줄 알았던 그 시절도, 실은 국수의 가락처럼 끊기 쉬운 것이었다. 빙하기가 왔다는 그 말도 실은 모두가 거짓이었다. 실은 아무도 죽지 않았다. 죽은 것은 회사를 그만두면 죽을 줄 알았던 과거의 나뿐이다.  









쉬지 않는다.

쉬는 법이 없다.

쉴 줄 모른다.

그렇게 길러져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기른 자식들이 역시나 그들의 뒤를 잇는다.

쉬지 않을수록

쉬는 법이 없을수록

쉴 줄 모를수록 

훌륭히, 잘 컸다는 얘기를 들을 것이다.











올 여름은 왜 이렇게 긴 것일까

라는 생각을 하다가 나는 비로소, 시간은 원래 넘쳐흐르는 것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정말이지 그 무렵의 시간은 말 그대로 철철 흘러넘치는 것이어서, 나는 언제나 새 치약의 퉁퉁한 몸통을 힘주어 누르는 기분으로 나의 시간을 향유했다. 신은 사실 인간이 감단키 어려울 만큼이나 긴 시간을 누구에게나 주고 있었다. 즉 누구에게라도, 새로 사온 치약만큼이나 완벽하고 풍부한 시간이 주어져 있었던 것이다. 

시간이 없다는 것은, 시간에 쫓긴다는 것은 - 돈을 대가로 누군가에게 자신의 시간을 팔고 있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니 지난 5년간 내가 팔았던 것은 나의 능력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의 시간, 나의 삶이었던 것이다.

알고보면, 인생의 모든 날은 휴일이다.












삼천포

라는 단어가 들어온 것은. "이곳이야. 이곳으로 빠지는 것이 삼미의 철학에 절대 부합하는 일이야." 











우선 우리를 놀라게 한 것은 해가 지면 거의 모든 가게가 문을 닫는다는 것이 었다. 즉 24시간 운영, 연중무휴, 연장근무, 불철주야, 철야 근무 같은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해가 뜨면 마을 사람들은 일을 시작한다. 아무도 서두르지 않는다. 뛰어다니는 것은 개들뿐이고, 때가 되면 밥을 먹고, 해가 지면 잠을 잔다. 쿨쿨 잔다. 여러분이 잠든 이 시간에도 이웃 면에서는 다수확 신품종의 벼 모종 보금을 비밀리에 착수, 내년의 수확 경쟁에서 한발 앞서가면 어쩌지요? 라고 물어봐야 소용없는 짓이다. 그렇다면 경쟁에서 앞선 이웃 면이 그 돈으로 국내 최대, 국내 최고의 농지형 테마파크를 국내 최초로 건립해버리면 어쩌지요? 라고 해봐야 그러거나 말거나다. 


헤기 뜨면 일을 시작하고, 할 만큼의 일을 하고, 먹을 만큼의 밥을 먹고, 해가 지면 잠을 자는 것이다. 글로 정리하고 보니 마치 삼미 슈퍼스타즈의 야구 같다. 



















그 전지 훈련의 어느 어귀쯤에서


그저 달리기만 하기에는 우리의 삶도 너무 아름다운 것이다. 라는 생각을, 했다. 

인생의 숙제는 따로 있었다. 나는 비로소 그 숙제가 어떤 것인지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고, 남아 있는 내 삶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야 할지를 희미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그것은 어떤 공을 치고 던질 것인가와도 같은 문제였고, 어떤 야구를 할 것인가와도 같은 문제였다. 필요 이상으로 바쁘고, 필요 이상으로 일하고, 필요 이상으로 크고, 필요 이상으로 빠르고, 필요 이상으로 모으고, 필요 이상으로 몰려 있는 세계에 인생은 존재하지 않는다. 


진짜 인생은 삼천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