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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불안_알랭드 보통

by yoni_k 2012. 10.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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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현재의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일 수도 있다는 느낌
우리가 동등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우리보다 나은 모습을 보일 때 받는 그 느낌
이것이야말로 불안의 원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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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

Ⅰ. 사랑결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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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스미스는<도덕감정론>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세상에서 힘들게 노력을 하고 부산을 떠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탐욕과 야망을 품고, 부를 추구하고, 권력과 명성을 얻으려는 목적은 무엇인가? 생활필수품을 얻으려는 것인가? 그것이라면 노동자의 최저 임금으로도 얻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인간 삶의 위대한 목적이라고 하는 이른바 삶의 조건의 개선에서 얻는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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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의 관심이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우리가 날 때부터 자신의 가치에 확신을 갖지 못하고 괴로워할 운명을 타고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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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적인 세계에서라면 이렇게 남들의 반응에 좌우되지는 않을 것이다. 무시를 당하든 주목을 받든, 칭찬을 받든 조롱을 당하든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누가 엉터리로 우리를 칭찬하는 소리에 귀가 솔깃하지 않을 것이다. 스스로 자신을 공정하게 평가하고 자신의 가치를 판단하여, 다른 사람이 우리가 못났다고 넌지시 암시한다 해도 상처받지 않을 것이다. 우리 자신의 가치를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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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에고'나 자아상은 바람이 새는 풍선과 같아, 늘 외부의 사랑이라는 헬륨을 집어넣어 주어야 하고, 무시라는 아주 작은 바늘에 취약하기 짝이 없다. 




Ⅱ . 속물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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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애정은 성취와 관련을 맺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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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이 좋아 잠시 아슬아슬하게 ㅔ손에 쥐고 있는 지위가 본질적 자아와 아무런 관련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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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은 세대를 따라 전해진다. 모든 학대 행위에 적용되는 패턴이지만, 속물도 속물을 낳는다. 나이든 세대는 낮은 계급에 속하는 것이 곧 재앙이라는 자신의 고정 관념을 젊은 세대에게 물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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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만한 사람에게 무시를 당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우리를 무시하는 사람들의 관심을 얻고자 하는 갈망이 생기기 때문이다(어떤 사람들을 싫어한다고 해서 그들이 우리를 좋아하는 것도 싫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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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사치품의 역사는 탐욕의 이야기라기보다는 감정적 상처의 기록으로 읽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이 역사는 남들의 경멸에 압박감을 느껴 자신에게도 사랑을 요구할 권리가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텅 빈 선반에 엄청난 것들을 전시하려 했던 사람들이 남긴 유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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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이 낮은 지위에 대한 전래의 물질적 형벌이라면, 무시와 외면은 속물적인 세상이 중요한 상징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에게 내리는 감정적 형벌이다. 













Ⅲ .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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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의 수준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즉 자리, 성취, 수입을 놓고 걱정이 늘어 났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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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적 궁핍은 급격하게 줄어들었지만, 역설적이게도 궁핌감과 궁핍에 대한 공포는 사라지지 않았고 외려 늘어나기까지 했다. 중세 유럽에서 변덕스러운 땅을 경작하던 조상은 도저히 상상도 하지 못할 부와 가능성의 축복을 받은 사람들이 놀랍게도 자신이 모자란 존재이고 자신의 소유도 충분치 못하다는 느낌에 시달리게 된 것이다.




어떤 것 - 예를 들어 부나 존중 - 의 적절한 수준은 결코 독립적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준거집단, 즉 우리와 같다고 여기는 사람들의 조건과 우리의 조건을 비교하여 결정된다. 우리가가 가진 것은 그 자체만으로 평가 할 수도 없고, 중세 조상의 생활과 비교하여 판단할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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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현재의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일 수도 있다는 느낌
우리가 동등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우리보다 나은 모습을 보일 때 받는 그 느낌
이것이야말로 불안의 원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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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신 앞에서는 평등할지 몰라도, 이것이 현실에서 평등을 추구할 이유가 되지는 못했다. 













우리가 가진 것에 만족할 때마다 우리는 실제로 소유한 것이 아무리 적더라도 부자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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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물고기가 되려고 노력하는 대신, 옆에 있어도 우리 자신의 크기를 의식하며 괴로울 일이 없는 작은 벗들을 주위에 모으는 데 에너지를 집중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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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지점까지 밀고 나간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루소는 머리 위에 지붕이 있고, 배를 채울 과일 몇 알과 견과가 있고, 저녁에 "어설픈 악기"를 연주하거나 "날카로운 돌을 사용하여 낚시용 카누를 만들" 수만 있다면 부족함이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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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적은 것을 기대하면 적은 것으로 행복할 수도 있다. 반면 모든 것을 기대하도록 학습을 받으면 많은 것을 가지고도 비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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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은 죄 지은 자와 죄가 없어 보이는 자 사이에 다리를 놓으려는 시도이며, 책임에 대한 통념에 도전하고, 인간이 수치를 당한다 해도 자신의 이야기를 할 권리까지 상실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존중하면서 그 사실을 심리학적으로 세련되게 표현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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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은 식패나 패배에 대한 단순화된 관점을 버리게 하고, 우리 본성의 풍토병과 같은 우둔과 일탈을 너그러운 눈으로 바라보게 한다. 사람들이 비극 예술에 담긴 교훈을 받아들인 세계에서는 실패의 결과가 우리를 그렇게 심하게 짓누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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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자아상을 진실되고 폭넓게 규정한다면, 물질적 축적은 우리 삶의 방향을 규정하는 여러 가지 가운데 하나에 불과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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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친절, 호기심, 감수성, 겸손, 경건, 지성 - 그는 이런 일군의 특징을 단순하게 "삶"이라고 불렀다-에서 부유해지기를 바랐다. 그래서 그는 <이 최후의 사람에게>에서 부에 대한 일반적인 금전적 관점을 버리고 "삶"에 기초한 관점을 채택하라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