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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두근두근 내 인생 _ 김애란

by yoni_k 2012. 7.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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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사랑하는 기준은, 세상이 정한 객관적인 요소가 아니구나.

나는 내 삶을 이렇게 두근거리며 살고 있을까.

두근 , 두근.

내삶의 심장을 마구마구 뛰게한 이 책. 

고마워 아름아. 나도 보고싶을거야. (가슴 한 켠이 먹먹히 아려온다.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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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나는 열일곱이 되었다. 사람들은 내가 지금까지 산 것이 기적이라 말한다. 나 역시 그렇다고 생각한다. 나와 비슷한 사람 중 열일곱을 넘긴 이는 매우 드물다. 하지만 나는 더 큰 기적은 항상 보통 속에 존재한다고 믿는 편이다. 보통의 삶을 살다 보통의 나이에 죽는 것, 나는 언제나 그런 것이 기적이라 믿어왔다. 내가 보기에 기적은 내 눈앞의 두분, 어머니와 아버지였다. 외삼촌과 외숙모였다. 이웃 아주머니와 아저씨였다. 한여름과 한겨울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진짜 어른, 그런 게 어떤 건지 알 수 없어도, 심지어는 오랫동안 그런 대우를 받고 싶었으면서도, 아버지는 자신이 그걸 진심으로 원한 적이 한번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아버지는 인생이 뭔지 몰랐다. 하지만 어른이란 단어에서 어쩐지 지독한 냄새가 난다는 건 알았다. 그건 단순히 피로나 권력, 또는 타락의 냄새가 아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막연히 그럴 거라 예상했는데, 막상 그 입구에 서고 보니 꼭 그런 것만도 아니었다. 아버지가 어른이란 말 속에서 본능적으로 감지한 것, 그것은 다름아닌 외로움의 냄새였다. 






'사람들은 왜 아이를 낳을까?'

나는 그 찰나의 햇살이 내게서 급히 떠나가지 않도록 다급하게 자판을 두드렸다.

'자기가 기억하지 못하는 생을 다시 살고 싶어서.'

그렇게 써놓고 보니 정말 그런 것 같았다. 누구도 본인의 어린시절을 또렷하게 기억하지는 못하니까, 특히 서너살 이전의 경험은 온전히 복원도리 수 없는 거니까, 자식을 통해 그걸 보는 거다. 그 시간을 다시 겪는 거다. 아, 내가 젖을 물었구나. 아, 나는 이맘때 목을 가눴구나. 아, 내가 저런 눈으로 엄마를 봤구나, 하고. 자기가 보지 못한 자기를 다시 보는 것. 부모가 됨으로써 한번 더 자식이 되는것. 사람들이 자식을 낳는 이뉴는 그 때문이지 않을까? 그러면 세살 무렵부터 늙기 시작한 아기를 가진 우리 부모님은 나를 통해 무엇을 보았을까... 곧이어 나는 다른 문제에 봉착했다.

'하느님은 왜 나를 만드셨을까?'

불행히 그 해답은 아직 찾지 못했다.








"아까 어머님이 그러시는데, 아름이 책 좋아한다며?"

"네."

"무슨 책 좋아해?"

"그냥 책이면 다 좋아요."

"그래?"
"네, 저는 마음보다 몸이 빨리 자라서, 그 속도를 따라가려면 마음도 빨리빨리 키워놓지 않으면 안되거든요."

"그럼 우리한테도 하나 소개해줘볼래?"

"어.. 뭐가 있더라? 아, 얼마 전에 본 시집에 이런문장이 있었어요. '한번에 한 사람이 된다는 건 충분히 좋은 일'."

"음, 그리고?"

"또... '한꺼번에 한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건 조금 슬픈 일'이란 표현도요'." 










"누군가가 다른 사람을 사랑할 때, 그 사랑을 알아보는 기준이 있어요."

어머니의 두 눈은 퉁퉁 부어 있었다.

"그건 그 사람이 도망치려 한다는 거예요."

"....."

"엄마, 나는 .. 엄마가 나한테서 도망치려 했다는 걸 알아서, 그 사랑이 진짜인 걸 알아요."









"그래서 뭐가 되고 싶어요, 아름인?"
"저는...."

한참 뜸을 들이다 나는 수줍게 입을 열었다.

"세상에서 제일 웃기는 자식이 되고 싶어요."

"...좀더 설명해줄래?"

"누가 그러는데 자식이 부모를 기쁘게 해줄 수 있는 방법엔 여러가지가 있대요."

"응,그렇지"

"건강한 것, 형제간에 의좋은 것. 공부를 잘하는 것. 운동을 잘하는 것.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은 것.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것. 결혼해서 아기를 낳는 것. 부모보다 오래 사는것... 많잖아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중에 제가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그래서 한참을 고민하다 생각해냈어요. 그럼 나는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자식이 되자고."











여러 글을 읽는 동안, 나도 모르게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해라는 말, 예전에는 나도 참 싫엇는데,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먼 곳에서 건네주는 딷스한 악수가 먹먹했다. 터무니없단 걸 알면서도, 또 번번이 저항하면서도, 우리는 이해라는 단어의 모서리에 가까스로 매달려 살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어쩌자고 인간은 이렇게 이해를 바라는 존재로 태어나버리게 된 걸까? 그리고 왜 그토록 자기가 느낀 무언가를 전하려 애쓰는 걸까? 공짜가 없는 이 세상에, 가끔은 교환이 아니라 손해를 바라고, 그러면서 기뻐하는 사람들은 또 왜 존재하는 걸까. 










'이 아이, 모든 연애의 시작엔 반드시 음악이 있다는 걸, 벌써부터 어떻게 알아차린 걸까?'









서하에게

날이 춥다.

히터를 종일 틀어놔도, 세상에 지구의 의지를 이길 수 잇는 것은 없나봐.

그렇지만 추위 앞에선, 모두가 똑같아지는 느낌이 좋기도해.

그래서 난 이 바람을 똑바로 쳐다보지.

어느 때는 눈이 시려 고개를 돌리지 않으면 안되지만.

그래도 가끔은 추위에게 으름장을 놓아야해.

그래, 나는 약해,

하지만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은 아니지, 하고.


한밤중, 외롭게 깨지 말고, 네가 숙면했으면 좋겠어.

그리고 그걸 온몸으로 돕는 빛과 바람,

나무들의 지지가 있었으면 좋겠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으면서 늘 무언가를 하고 있는 백색소음도.

안녕.


















가슴 뛰는 날들이 이어졌다. 내가 말하고, 그애가 답하고, 다시 그애가 말하면 내가 답하는. 한 줄의 문장으로 하루를 버틸 수 있고, 한 번의 호흡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하루. 딱히 뭐라 이름부를 수 있는 사이는 아니라도, 그저 얘기를 나눌 친구가 있다는게 좋았다. 









아름에게

어젠 새벽에 한참 동안 깨어 있었어.

더이상 잠이 오지 않아서. 

그럴 땐 침대 모서리로 기어가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어.

그러면 세상에 그 음악의 수신인과 발신인

이렇게 딱 둘만 존재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거든.

마음에 드는 고독이지.


우리는 이미 아주 많은 단어를 갖고 있지만

게다가 도 어떤말이든 할 수 있지만

어느 때는 그것도 모자라 노래하고 또 듣게 되는가봐.

음악 갖고 하느님이 협상한 거지.














서하에게


음, 일단 생각나는 대로 말해볼게. 

우리집엔 황토쌀독이 하나 있어.

이른 아침, 어머니는 밥을 하려고 거기서 쌀을 푸곤 했는데,

그때 나는 어렵풋이 부엌에서 새어나오는 독 뚜껑 닫히는 소리가 좋았어.

그 소시를 들으면 살고 싶어졌지.

상투적인 멜로영화 예고편, 그런 것을 봐도 살고 싶어지고.

아! 재미있는 오락 프로그램에서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이 

재치있는 애드리브를 던질 때, 그때 나는 살고 싶어져.

동네 구멍가게의 무뚝뚝한 주인아저씨,

그 아저씨가 드라마를 보다 우는 것을 보고 살고 싶다 생각한 적도 있어.

그리고 또 뭐가 있을까.

여러가지 색깔이  뒤섞인 저녁 구름. 그걸 보면 살고 싶어져.

처음 보는 예쁜 단어. 그걸 봐도 나는 살고 싶어지지.

다음은 막 떠오르는 대로 나열해볼게.

학교 운동장에 남은 축구화 자국, 밑줄이 많이 그어진 더러운 교과서, 경기에서 진 뒤 우는 충국선수들, 버스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여자애들, 어머니의 빗에 낀 머리카락, 내 머리맡에서 아버지가 발톱 깎는 소리 , 한밤 중 윗집 사람이 물 내리는 소리, 매년 반복되는 특징 없는 새해 덕담, 오후 두시 라디오 프로그램에 전화를 걸어 말도 안되는 성대모사를 하는 중년남자, 내 상상의 속도를 넘어서며 새롭게 쏟아져나오는 전자기기들, 한낮의 물리치료실에서 라디오를 통해 나른하게 들려오는 복음성가, 집에 쌓인 영수증...

와.. 정말 많다. 그지? 아마 밤새워도 모자랄걸? 나머지는 차차 알려줄게.

어쨌든 내 주위를 둘러싼 모든 게 나를 두근대게 해.

아, 그리고 하나 더 있다.

네가 보낸 편지.

그럼 또 쓸게.

잘자. 















' 어릴 때 나는 까꿍놀이라는 걸 좋아했대. 아버지가 문 뒤에서 ' 까꿍!' 하고 나타나면 까르르 웃고, 감쪽같이 사라진 뒤 다시 '까꿍!'하고 나타나면 더 크게 또 웃었다나봐. 그런데 어느 책에서 보니까, 그건 아이가 눈에 보이지 않는 사물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기억을 저장하는 거라더라. 그런 걸 배워야 알 수 있다니. 그렇게 작은 바보들이 어떻게 나중에 기술자도 되고 학자도 되는지 모르겠어. 나는 처음부터 내가 나인 줄 알았는데, 내가 나이기까지 대체 얼마나 많은 손을 타야 했던걸까. 내가 잠든 새 부모님이 하신 일들을 생각하면 가끔 놀라워.

....'
















왜 지금이냐고, 조금만 참다 갖지 그러셨느냐고,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오래전 아무도 모르게 원망하고 서웅해했던 기억도 굳이 헤집어내지 않았다. 이제 그런 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정말이지 하나도 중요할 리 없었다. 어머니는 대답 대신 내 손을 꼭 잡았다. 나는 잠에 취한 사람처럼 느리고 아둔하게 말했다.

"아빠."

"응?"

"그리고 엄마."

"그래."
끄리꼰 남아 있는 힘을 가까스로 짜내 말했다.

"보고 싶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