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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 오징어의 기습 _ 박민규

by yoni_k 2012. 1. 30.

마치 당근을 꺾듯 전화를 끊었기 때문에, 나는 어떤 항변도 할 수 없었다. 억울해서 귀가 두세 배는 커진 느낌이었고, 무엇보다 나는 납득할 수 없었다. 다시 다이얼을 돌렸지만 전화는 계속 통화중이었다. 딸각. 아무래도, 나를 제외한 전 세계가 통화중인 기분이었다. 


이상하게도 그후, 나는 대왕오징어에서 관심이 멀어졌다. 딱히 등을 돌린 것이 아니라, 이래저래 새로운 관심사들이 생겨난 것이었다. B도 마찬가지였다. 고등학생이 된 후로, 우리는 아무도 대왕오징어를 논하거나 하지 않았다. 그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이상하게도, 그랬다. 


이것이 내가 아는 대왕오징어의 전부이다. 즉 수많은 주간을 살아오면서 내가 겪은 대왕오징어의 경향인 것이다. 결국 그 보다는, 보다 보편적인 다른 경향들에 의해 나는 조금씩 지금의 <나>가 되었다. 이십일 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눈과 귀와 코를 막고, 한 인간이 보편적인 인류의 한 사람이 되기에는 너무나 충분한 시간이다. 결국 나는, 150미터의 대왕오징어를 15센치미터로 정정하는 인간의 기분 같은 것을, 이해하는 인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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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어릴적 이 소설의 주인공처럼 대왕 오징어를 믿거나 기발한 발상으로 다른 사람들을 놀래킨 인물은 아니였지만,
그러한 사람을 부러워하는 (약간 비주류의 사람을 동경하는 경향이 있다) 인간으로써 굉장히 공감이 되는 소설이었다.
독특한 사람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