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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_ 김연수

by yoni_k 2012. 3. 1.





엄마는 고통 속에서 죽어갔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럽다고 했다.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엄마의 고통을 함께한 것은 주기적으로 엄마의 몸속으로 들어가던 진통제뿐이었다. 고통 앞에서는 평생 가졌던 신앙마저도 진통제가 먼저 몸속으로 들어가리를 기다려야만 했다. 나는 엄마 덕분에 삶과 죽은 사이에는 고통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전적으로 개인적인 고통. 엄마가 죽던 그 순간까지 나는 정신을 잃은 엄마의 손을 어루만지며 침이 마르도록 사랑한다고 말했으나, 그 마지막순간까지도 나는 엄마의 고통만은 이해할 수 없었다. 고통보다는 죽음이 더 이해하기 쉬운 모양인지, 막상 엄마가 숨을 거둔 뒤에는 그간 병상에 누워 있던 엄마와의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함께 느끼지 못한다는 점에서 고통은 분명히 엄마와 나 사이를 가로막았지만, 죽은음 그 정도는 아니었다. 그날, 엄마의 몸이 병실에서 차가운 영안실로 옮겨지는 동안, 나는 그 노을을 봤다. 아니, 그 노을을 봤다기보다는 그 노을이 보였다. 








착해지지 않아도 돼. 무릎으로 기어다니지 않아도 돼. 사막 건너 100마일, 후회 따윈 없어. 몸속에 사는 부드러운 동물, 사랑하는 것을 그냥 사랑하게 내버려두면 돼. 그러면 세계는 굴러가는 거여. 그러면 태양의 비의 맑은 자갈들은 풍경을 가로질러 움직이는 거여. 대초원들과 깊은 숲들, 산들과 강들 너머까지. 그러면 기러기들, 맑고 푸른 공기 드높이, 다시 집으로 날아가는 거야.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너는 상상하는 대로 세계를 볼 수 있어. 기러기들, 너를 소리쳐 부르잖아, 꽥꽥거리며 달뜬 목소리고 - 네가 있어야 할 곳은 이 세상 모든것들 그 한가운데라고, 그 한가운데 서서 나는 고개를 들고 흑두루미들이 선회비행을 마치고 들판으로 다시 내려올 때까지, 철새들을 카운트했던 중학생들도, 그 광경을 지켜 보기 위해 새벽부터 몰려들었던 관광객들도 다들 돌아가고 나서도 한참이 지날 때까지, 그 한가운데 서서 가만히 흐린 하늘으 ㄹ지켜보고 서 있었다. 그 한가운데 서서. 노을을 기다리며. 다시 집으로 날아가는 새들을 볼 수 있을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