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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나의 소소한 일상 _ 다자이 오사무 산문집

by yoni_k 2012. 1. 30.




술을 싫어하다   
술을 마시면 기분을 속일 수가 있어서 엉터리를 지껄여도 그다지 내심 반성하지 않게 되어 정말 도움이 된다.

그 대신에 술이 깨면 후회도 심하다. 땅바닥을 구르면서 와, 하고 크게 소리치고 싶은 심정이다. 가슴이 쿵쿵 뛰고 안절부절 못한다.

뭐라 할 수 없이 울적하다. 죽고 싶다고 생각한다.술을 알고나서 벌써 십 년이 지났지만, 전혀 그 기분에 익숙해지질 않는다.

태연하게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부끄럽고 후회가 되어 글자 그대로 뒹군다. 그럼 술을 관두면 될 텐데, 친구의 얼굴을 보면 역시 이상하게 흥분되어 겁에 질려 떠는 듯한 전율을 전신에 느끼고, 술이라도 마시지 않으면 못 견디는 것이다. 성가신 일이다.




나태라는 트럼프

비너스는 결심했다. 1월 1일 아침 일찍 신들의 아버지 주피터의 궁전에 참배하러 가는 도중에 만난 세 번째 남자를 내 평생의 남편으로 삼자. 주피터 신이시여, 부탁드리나이다, 좋은 남편을 보내주시옵소서, 라고.

새해 첫날. 새하얀 헝겊을 머리부터 쓰고, 나는 듯이 집을 나섰다. 숲 속 좁은 길에서 첫 번째 남자와 만났다. 보기에도 지저분한 털복숭이 신이었다. 술 출구 자작나무 밑에서 두번 째 남자와 만났다. 비너스의 발은 딱 멈춰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남자는 늠름한 미남자였던 것이다. 아침 안갯속을 팔짱을 낄 채 비너스의 얼굴은 쳐다보지도 않고 천천히 걷고 있었다. 

" 아, 이 사람이다. 세 번째는 이 사람이다. 두 번째는, 두 번째는 이 자작나무야."
그렇게 소리치고 늠름한  넓은 가슴에 몸을 던졌다. 주어진 운명의 바람이 부는 대로 몸을 맡기다가, 중요한 때에 휙 몸을 틀어 보다 나은 운명을 만든다. 숙명과 하나의 인위적인 기술. 비너스의 결혼은 행복했다. 그 대장부야말로 주피터 신의 아들, 천둥번개의 정복자 발칸이었다. 큐피트라는 사랑스런 아이도 생겼다. 

 제군이 20세기의 도회지 거리에서 이런 점술을 자욱한 안개와 남의 눈을 피해 몰래 시도할 때, 곧이곧대로 세 번째 사람을 고르지 않아도 된다. 때에 따라서는 전신주를, 우체통을, 가로수를 각각 한사람으로 치면 된다. 큐피트가 태어날 것은 장담할 수 없지만 발칸 씨를 얻게 될 것은 확실하다. 나를 믿어라. 



이런 이야기를 쓰면서 꼴사나워서 낯 뜨거워 견딜 수가 없다. 그래도 이 이야기는 내 좋은 친구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꼭 써 두고 싶은 것이다. 순수를 추구하다가 질식하기보다는, 나는 탁해도 크고 싶다.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별것 아니다. 한마디로 말할 수 있다. 지기 싫은 것이다.

 이 작품이 건강한지 건강하지 않은지, 그것은 독자가 결정해 주리라 생각하지만, 이 작품은 결코 엉터리가 아니다. 엉터리는 커녕 나는 필사적이다. 이런 소설을 지금 발표하느느 것은 나한테 불이익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서른한 살은 서른한 살대로 이것저것 모험을 해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전쟁과 평화를 난 아직 쓸 수 없다. 나는 앞으로도 여로모로 헤멜 것이다. 괴로워할 것이다. 파도는 거칠다. 그 점은 자만하지 않는다. 충분히 소심할 정도로 조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의 형식도 정서도 결국 서른한 살의 그것에서 한 발짝도 더 나가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나는 자신을 가져야 한다. 서른한 살은 서른한 살처럼 쓰는 수밖에 없다. 그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쓰면서 괜히 슬퍼진다. 이런 얘기를 써서 안 되는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슴이 울렁거려 도저히 쓰지 않고는 견딜수가 없었던 것이다. 요즘은 정말 주의하고 주의하며 살얼음을 밟는 심정으로 생활하고 있다. 무척 심하게 당해왔으니까.

그래도 이젠 괜찮다. 나는 해볼 것이다. 아직은 조금 비틀거리지만 이제 곧 단단하게 자랄 것이다. 거짓말을 안 하는 삶은 결코 쓰러지지 않는다, 고 난 먼저 믿어야 한다. 


나는 달한테 편지를 받았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공포였다. 가만히 있지 못해 벌떡 일어나 커튼을 열고 창을 열어젖혀 달을 보았다. 달은 낯선 타인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뭔가 말을 걸려다가 나는 화들딱 놀라 숨을 죽였다. 달은 그래도 모른 척하고 있다. 냉혹하고 엄격하여, 처음부터 인간 따윈 문제 삼지도 않는다. 차웜이 다르다. 나는 흉측하게 우뚝 서서 쓴웃음도 아니고 부끄러움도 아니고, 그런 간단한 것이 아니어서, 신음했다. 그대로 작은 여치가 되고 싶었다. 

 어리광부리고 있네. 자연 가운데 조그맣게 살아가는 고독, 준엄한을 알았습니다. 번개에 집은 불타고 박꽃인가 하노라. 그 잿더미 속의 박꽃 한송이를 강하고 소중하게 키워가려고 생각했습니다.


고뇌의 연감  

후세 사람이 우리가 겪은 이 시대의 사조를 살필 때 소위 역사가들이 쓴 책보다 우리가 늘 ㅆ는 한 개인의 하찮은 삶의 묘사 쪽이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우습게 볼 게 아닌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런저런 사회사상가들의 추구나 단안에 개의치 않고 나라는 한 개인의 사상사를 여기에 쓰고자 싶다.


    

나는 사상이라는 단어 조차에도 반발을 느낀다. 하물며 사상의 발전 따위 같은 이야기에는 짜증이 난다. 금세 들통날 서투른 연극같이 느껴지느 것이다.

숫제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 저한테는 사상 따위 없습니다. 그저 좋다, 싫다 뿐이지요."

나는 나로서 잊지 못할 일만은 단편적으로 쓰려고 한다. 단편과 단편 사이를 연결시키려고 그 사상가들은 뻔한 거짓 설명에 몰두하지만, 속물들은 그 틈을 메운 저질스러운 거짓 설명이 더 없이 고마운 듯, 찬탄과 갈채를 그 부분에 보내는 것같다. 정말이지 나로서는 짜증이 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데......"

속물이 묻는다. 

"당신의 그 유년 시절의 데모크라시는 그 뒤 어떤 형태로 발전했나요.?"

나는 멍청한 얼굴로 대답한다.

"글쎄요,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는데요."



나는 순수를 동경했다. 무보수의 행위, 전혀 이기심이 없는 삶, 그렇지만 그것은 지난한 일이었다. 나는 그저 홧술을 마실 뿐이었다.

 내가 가장 증오한 것은 위선이었다. 



부모라는 두 글자  
"어디에 가든, 무엇을 하든, 부모라는 두 글자만은 잊지 말아다오." 


봄 
바쁜 것도 한가한 것도, 모두 간발의 차. 


찾는사람 

"아가씨. 그때는 고마웠습니다. 그때의 거지가 저입니다."

이 말이 그 여자분 귀까지 도달하지 않으리라는 것, 마치 한 용사르애도하려고 비행기를 타고 그 용사가 잠든 전쟁터 상공에서 꽃다발을 던져도 결코 용사가 묻힌 곳에 떨어지지 않고, 엉뚱한 저 먼 숲에 사는 독수리 둥지에 툭 떨어져 새끼들을 공연히 놀라게 하거나, 아니면 덧없이 바닷물결 사이에 떠다니게 되는 것처럼, 이는 필경 다다르든 다다르지 않던 그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 말 혹은 꽃다발을 던진 사람의 마음이 풀리면 된다는 퍽이나 이기적인 계책에 불과하다고 생각되어지지만, 그래도 역시 저는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아가씨. 그때는 고마웠습니다. 그때의 거지가 저입니다."


내 반생을 말하다.  
프랑스 문학에서는 19세기라면 대개 발자크, 플로베르와 같은 소위 대문호에 탄복하지 않으면 왠지 문인으로서의 자격이 모자란 듯이 생각하는 이상한 상식이 있는 것 같습니다만, 저는 그런 대문호의 작품을 실제로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뮈세, 도데와 같은 작가를 몰래 애독하고 있습니다.러시아에서는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등 역시 누구라도 탄복하지 않으면, 문인 자격이 모자라는 것이 상식이 되어있고, 그것은 확실히 그렇지만, 역시 저는 체호프나, 누구보다도 러시아에서는 푸시킨 한 사람이라 해도 될 만큼 경도 되어 있습니다. 

바다  
도쿄의 미타카 집에 살 때에는 매일같이 근처에 폭탄이 떨어져서, 나는 죽어도 상관없지만, 그러나 이 아이 머리 위에 폭탄이 떨어지면 이 아이는 끝내 바다라는 걸 못 보고 죽게 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나는 쓰가루 평야 한가운데서 태어났기 때문에 바다를 보는 것이 늦어, 열 살 무렵에 처음 바다를 보았다. 그리고 그때의 흥분은 지금도 나의 가장 귀중한 추억 중의 하나이다. 이 아이에게도 한번 바다를 보여주고 싶었다.     



체리 

엄마는 한 살 난 처녀에게 젖을 물리고, 아빠와 장녀와 장남의 밥 시중들랴, 아이들이 흘린 것을 닦으랴, 주우랴, 코를 풀어주랴 팔면육비의 눈부신 활약을 하면서 대꾸한다. 

"아빠는 코에 땀이 제일 많이 나는군요. 늘 부지런히 코를 닦으셔."

아비는 쓴웃음을 짓는다.

"그럼, 당신은 어디야. 허벅지인가?"

"정말 고상한 아버지군요."

"아니 여보, 의학적인 이야기잖아. 고상도 천박도 없지."

"나는요."

엄마는 조금 진지한 얼굴이 되었다.

" 이 젖과 젖 사이, 눈물의 계곡....."

눈물의 계곡.

아비는 입 다물고 식사를 계속한다. 


나는 집에서 늘 농담만 한다. 그야말로 마음에 고민과 번뇌가 많기 때문에 겉으로는 쾌락을 가장하지 않을 수 없다고나 할까. 아니, 집에서뿐만 아니라, 나는 남을 대할 때에도 아무리 마음이 괴롭고 아무리 몸이 힘들어도 거의 필사적으로,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손님과 헤어지고나면 나는 피로에 휘청거리고 돈 문제, 도덕 문제, 자살을 생각한다.  


나는 논쟁을 해서 이긴 적이 없다. 정해놓고 진다. 상대방이 품고 있는 확신의 단단함, 자기 긍정의 엄청남에 압도당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침묵한다. 그러나 천천히 생각해보면 상대가 제멋대로임을 깨닫게 되고, 이쪽만 나쁜 게 아니라고 확신하게 되지만, 한번 말싸움에서 진 주제에 또 집요하게 전투를 재개하는 것도 음산하다. 게다가 말싸움은 몸싸움만큼이나 언제까지고 불쾌한 증오로 남기 때문에 분노에 떨면서 웃고 침묵하고, 그리고는 이리저리 생각하다 끝내 홧술을 마시게 되는 것이다.     



가정의 행복

나에게 이 소설을 구상하게 한 것은 그 관리의 히죽거리는 웃음이다. 그 히죽거리는 웃음의 근원은 무엇일까? 이ㅡㄹㄴ바 공무원의 악의 지축은 무엇일까? 소위 공무원다운 기풍의 뿌리는 무엇일까? 나는 그것을 더듬어가다 가정의 에고이즘이라고나 할, 우울한 관념에 부딪히고, 그리고 결국 다음과 같은 끔찍한 결론을 얻은 것이다.

 가라사대 가정의 행복은 제악의 근원 


생각하는 갈대 
끌려가는 자의 노래라는 말이 있다. 여윈 말에 태워져 형장으로 끌려까는 사형수가, 그래도 자신의 영락함을 보이지 않으려고 태연한 듯이 말 위에서 나지막이 부르는 노래를 일컽는 것이다. 쓸데없는 오기를 조롱하는 말이겠지만, 문학 따위도 그런 것은 아닐지. 


자기 보존의 본능은 마차를 끄는 말이나 집 지키는 개에게도 있다. 그렇지만 이런 일상윤리의 뻔한 엉터리를 모른 척 답습해 나가는 것이 또 세상의 귀여운 점이니, 혈기로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라, 고 같은 하숙집의 샐러리맨이 내게 충고해 주었다.

 아니지, 나는 마음을 추스르고 속으로 중얼거린다. 나는 새로운윤리를 수립하는 거야. 미와 예지를 기준으로 하는 새로운 윤리를 만드는 거다. 아름다운 것, 영리한 것은 모두 옳다. 추함과 우둔함은 사형이다. 이렇게 나섰지만 막상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살인, 방화, 강간, 몸을 떨면서 그들을 동경했지만 무엇 하나 하지 못했다. 일어섰다 주저 앉았다. 샐러리맨이 또 나타나서 체념과 태만의 좋은 점을 역설한다.


자기 작품이 좋을지 나쁠지는 자기가 가장 잘 안다. 천에 하나라도 스스로 좋다고 인정한 작품이 있다면, 그보다 행복할 수는 없는 것이다. 각자 자기 마음에 잘 물어볼지어다.   


결국 돈은 최상의 것이 아니었다. 지금 내가 만약 1,000엔을 얻어도, 자네가 원한다면 자네에게 주겠다. 남은 것은 창공과 같은 태고의 모습을 간직한 때 묻지 않은 애정과, 그리고 가장 무자비하고 가장 느긋한 복수심.  


세상살이의 비결

절도를 지킬것. 절도를 지킬 것.  


나한테 단 하나 확실한 것은 나 자신의 육체이다. 이렇게 누워 열 손가락을 본다. 움직인다. 오른손 둘째 손가락, 움직인다. 왼손 새끼 손가락, 이것도 움직인다. 이것을 한참 보고 있으면, 아아, 나는 진짜다, 라고 느낀다. 다른 건 모두 조각조각 사방으로 흩어지는 구름 같아,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그것조차도 분명치 않다. 감히! 감상이라고! 


엄격함과 냉혹함은, 이미 그 뿌리부터 다르다. 엄격함의 근저에는 인간 본연의 따뜻한 배려가 가득하지만, 냉혹함은 싸구려 유리그릇 같아, 거기에서는 꽃 한 송이 피지 않고, 전혀 인연 없는 것들이다. 


문득 생각하다

뭐야, 모두 똑같은 말을 하고 있잖아. 


 

가장 일상적인 것

나는 남성이다. 이 발견. 그는 아내의 여성을 깨닫고 나서 비로소, 그의 남성을 깨달았다. 동거한지 칠 년 만에.


 

벽안탁발 

정해진 이치

고뇌가 많으면, 그만큼 보답이 적다. 

내 평생의 기원

하늘에 울려 퍼질 만큼의, 밝고 밝은 출세 미담을 한 편만 쓰는 것. 


나는 누군가와 결탁해서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늘 혼자다. 그리고 혼자 있을 때의 내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고 믿고 있다. 

나는 모든 것을 알고 있습니다, 라고 말하고 싶어 하는 듯한, 예지의 자긍심에 찬 말 같은 얼굴에 나는 말한다. 

 " 그래서 자네는 무엇을 했는데요?"   


공자가 말하기를, 군자는 남을 즐겁게 해도 자신을 팔지 않는다. 소인은 자신을 팔아도 여전히 남을 즐겁게 하지 못한다. 

문학의 묘미는, 이 소인의 슬픔에 다른 아닌 것이다.  


생각의 패배 

진실은 저 세상에 가서 하라는 말이 있다. 진정한 사랑의 실증은 이 세상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는 끝내 특정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일 따위, 도저히 안 되는 것이 아닐까? 신만이 제대로 사랑할 수 있다. 정말일까?

 모두 잘 안다. 자네의 슬쓸함을 모두 안다. 이것도 나의 오만의 소치일까?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사람은 사람을 구할 수 없다. 정말일까?

뭘 쓸까? 이런 건 어떨까?

사랑은 이 세상에 존재한다. 틀림없이 있다. 찾아지지 않는 것은, 사랑의 표현이다. 그 작법이다.  



만년에 대하여 
만년을 읽으시겠습니까? 아름다움은 남이 일러줘서 느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혼자서 문득 발견하는 것입니다. 만년 안에서 당신이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을지 없을지, 그것은 당신의 자유입니다. 독자의 황금권리 입니다. 그래서 그다지 추천하고 싶지 않습니다. 못 알아볼 녀석은 두들겨 패도 절대로 알 수 없거든요.   


 
하루의 노고 
무성격?좋아. 비굴? 괜찮아. 여성적? 그런가. 복수심? 좋아. 경박한자? 또한 좋아. 나태? 좋아. 괴짜? 좋아. 괴물? 좋아. 고전적 질서에 대한 동경이든 결별이든, 모두 다 받아들이고 한데 묶여 그대로 걷는다. 거기에 서장이 있다. 거기게 발전의 길이 있다. 일컬어 낭만적 완성, 낭만적 질서, 이는 완전히 새롭다. 십자가에 매달렷다면 십자가 채 걷는다. 감옥에 넣어졌다면 감옥을 부수지 않고, 감옥채 걷는다. 웃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이밖에 살 방도가 없는 것이다. 지금은 그렇게 웃고 있지만, 언젠가 자네도 짚이는 바가 있을 것이다. 남은 건 패배의 노예냐 사멸이냐, 둘 중 한 쪽이다. 



답안낙제  

출발선에 늘어서 있다가 아직 출발신호인 총소리가 채 울리기도 전에 뛰어나가, 심판이 제지하는 소리도 듣지 못하고, 열심히 달리고 또 달려서 드디어 득의양양하여 100미터 골에 뛰어들어, 사진반 플래시에 대비하여 씩 웃어보이지만, 조금 상황이 이상하고 갈채도 없고, 만장의 사람들이 모두 딱하다는 듯이 그 선수를 보고 있다. 선수는 비로소 아차 자신의 실수를 알아채고, 부끄럽기도 하고 괴롭기도 하고, 아무튼 도무지 말이 안 된다. 

 다시 나는 풀이 죽어 출발점으로 돌아가 전신이 녹초가 되어 헐레벌떡 거친 숨을 내쉬며, 출발선에 섰다. 먼저 출발한 벌로, 다른 선수보다 1미터 뒤에서 뛰어야 한다. 

 준비!

 심판의 냉혹한 목소리가 다시 들린다. 

 나는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그 레이스는 100미터 경ㅈ가 아니었던 것이다. 1,000미터, 5,000미터, 아니, 그보다 더 긴 마라톤이었다.

 이기고 싶다. 추하도록 안달하며 모든 정력을 다 써버려서 이렇게 지쳤지만, 그래도 나는 선수다. 이기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단순한 선수이다. 누군가 이 장래성 적은 선수를 위해 성원을 보내줄 고매한 분은 안 계실까?


허영은 서글픈 것이다. 그리운 것이다. 그만큼 지겨운 것이다. 호흡이 긴 것이다. 큰 마라톤이다 .지금 당장 한꺼번에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생각하지 말게. 느긋하게 마음먹고, 적어도 하루하루를 후회 없이 보내시오. 행복은 삼 년 늦게 온다든지. 



여인창조 
"예지는 악덕이다. 그렇지만 작가는 그것을 잃어서는 안 된다." 




희미한 목소리
 

느슨함을 경멸하는 것만큰 쉬운 일은 없다. 그런데 사람은 의외로 안이하게 살고 있다. 타인의 안이함을 조소하면서, 자신의 안이함은 미덕으로 생각하고 싶어한다.


"생활이란 무엇입니까?"
"쓸쓸함을 견디는 것입니다."


자기변명은 패배의 징조이다. 이미 패배의 모습니다. 


"패배란 무엇입니까?"

"악에 알랑거리며 미소하는 것입니다."

"악이란 무엇입니까?"

"의식적인 구타입니다. 의식적인 구타는 악이 아닌니다."


논의란 왕왕 타협하고 싶은 정열이다. 


"자신이란 무엇입니까?"

"미래의 촛불을 보았을 때의 마음의 모습입니다."

"현재의?"

"그것은 쓸모가 없습니다. 바보입니다."

"당신에게는 자신이 있습니가?"

"있습니다."


"예술이란 무엇입니까?"

"제비꽃입니다."

"시시해."

"시시한 것입니다."



"예술가란 무엇입니까?"

"돼지코입니다."

"그건 심하다."

"코는 제비꽃 냄새를 압니다."


"오늘은 조금 신바람이 난 것 같군요."

"그렇습니다. 예술은 그때그때의 컨디션으로 생깁니다."


 






일문일답 
"생활에 있어서는 언제나 사랑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나뿐 아니라 누구라도 생각하는 일이겠지요. 그런데 이것이 어렵습니다. 사랑이 뭐니 하면, 달콤한 것이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어려운 것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나는 아직 알지 못합니다. 좀처럼 쓸 수 없는 말이라고 느껴집니다. 스스로는 무척 애정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완전히 반대인 경우도 있으니까요. 어쨌든 어렵습니다. 아까 말한 정직과, 조금 관련이 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사랑과 정직.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나로서는 아직 모르는 부분이 있습니다. 정직은 현실의 문제, 사랑은 이상, 음, 그런 곳에 나의 주의라고 할 것이 숨어 있는지 모릅니다. 저는 아직 확실히 모르겠습니다. " 



하나의 약속  
이 점에 작가의 환상의 불가사의함이 존재한다. 사실은 소설보다도 기이하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도 안 본 사실도 세상에 있는 것이다. 긜고 그런 사실에야말로, 고귀한 보석이 빛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바로 그것을 쓰고 싶은 것이 작가가 사는 보람이다.  



혁명 
스스로 한 일은 그렇게 확언하지 않으면, 혁명이고 뭐고 실현되지 않습니다. 스스로 그렇게 하고도 다른 일이 하고 싶어서 인간은 이래야 한다, 라는 등 말하는 동안은 인간 내면으로부터의 혁명이 언제까지고 안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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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산문집을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