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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을고시원 체류기 _ 박민규

by yoni_k 2012. 1. 30.

그 귓속의 달팽이관 속의 달팽이처럼, 나는 잠시 고요한 감회에 젖어들었다. 그랬다. 나는 분명 쥐의 몸에서 자라난 사람 귓속의 달팽이관속의 달팽이처럼, 그 고시원의 복도 끝 방에서 살았던 적이 있다. 아주 오래전의 일이지만, 분명한 사실이다. 만약 당신이 그런 고시원에서 살아본 적이 없다면, 부디 <달팽이관 속엔 달팽이가 없어>라는 식의 힐난은 삼가주기 바란다. 장담컨대, 세상의 일은 아무도 알 수 없다. 


잘 둘러보면


그런 고시원의 복도 끝 방에 인간이 사는 것처럼, 그런 귓속의 달팽이관 속에 달팽기가 살 수 도 있다는 것이다. 다를 바 없는 얘기다. 그러니까 이것은 - 그런 귓속의 달팽이관 같은 고시원의 복도 끝 방에 살았던 인간의 이야기이다. 이미 십년도 전의 일이지만 그 고시원의 유전자는 분명 나의 몸 속에 이식되어 있다. 어쩌면 내 등뒤에는 이미 커다란 <고시원의 귀>가 자라 있을지도 모른다. 설령 그렇다 해도, 그것 역시 누구의 탓도 아니란 생각이다. 귀가 자라는 사이에도, 죽은 사람이 있고 죽은 쥐가 있고 죽은 달팽이가 있듯이. 즉


살다보면, 말이다.



인간은 결국 혼자라는 사실과, 이 세상은 혼자만 사는 게 아니란 사실을 - 동시에, 뼈쩌리게 느끼게 되었다. 모순 같은 말이지만 지금도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즉, 어쩌면 인간은 - 혼자서 세상을 사는 게 아니기 때문에, 혼자인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