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모든 자녀들의 고해성사. 값없이 받은 사랑. 핀잔으로 되돌렸던, 상처받은 존재 .
엄마라는 이름으로 가두어 두었던 한 여인에 대한 이야기.
엄마는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그런 엄마에게 '너'는 어떤 딸이었는지 되돌아보게하는 가슴 먹먹해지는 소설.
자식들의 구구절절한 어머니에 대한 묘사가 ,
그리고 애정어린 표현이 한국의 모든 어머니와 자식들의 고백이 된 소설.
정말 나의 고백이 된 이야기.
사랑하는 딸아. 괜찮다. 라며 다정히 손 잡아 주는 소설.
더욱 슬퍼만 지는. 그러나 슬퍼만할 순 없는 그런 삶에 대한 이야기.
매일 목구멍까지 차오른 그리움을 삼키고 살아가겠지 그것이 우리가 질 죄값이겠지...
효도 해야지. 더욱 잘해야지 각성하게하는 소설.
엄마. 엄마. '어어어.. . 어어' . 읽는 내내 저자와 함께 울었던,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우리 모두가 느끼는 아린 마음으로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
책을 덮고 나서도 가슴에 꼬옥 안아보게 된다. 마음이 붉어진다.
_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
_
엄마가 스스럼없이 너를 혼낼 때는 네가 엄마, 엄마를 더 자주 불렀던 것 같다. 엄마라는 말에는 친근감만이 아니라 나 좀 돌봐줘, 라는 호소가 배어 있다. 혼만 내지 말고 머리를 쓰다듬어줘, 옳고 그름을 떠나 내 편이 되어줘, 라는. 너는 어머니 대신 엄마라는 말을 포기 하지 않았다. 엄마를 잃어버린 지금도. 엄마라고 부를 때의 너의 마음에는 엄마가 건강하다고 믿고 싶은 마음도 섞여 있었다. 엄마는 힘이 세다고, 엄마는 무엇이든 거칠 게 없으며 엄마는 이 도시에서 네가 무언가에 좌절을 겪을 때마다 수화기 저편에 있는 존재라고.
_
너는 엄마와 부엌을 따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엄마는 부엌이었고 부엌은 엄마였다. 엄마가 과연 부엌을 좋아했을까? 하는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_
엄마의 두통의 원인을 찾으러 다니다가 의사로부터 뜻밖의 말을 들었다. 오래전에 너의 엄마가 뇌졸중을 앓았다는 것이다. 뇌졸중이라니? 그런 적이 없다고 했다. 의사는 엄마의 뇌를 촬여한 사진 속의 한 점을 가리키며 뇌졸중이 지나간 흔적이라고 했다. 뇌졸중이 어떻게 본인도 모르게 지나갈 수 있단 말인가. 의사는 본인이 모를 수는 없다고 했다. 피가 고여 있는 걸로 보아 본인도 그 충격을 감지했을 거라고 했다. 의사는 엄머의 몸은 항상 아파왔다고 했다. 엄마의 몸은 늘 진통이 함께한 ㄴ 상태라고 했다.
"늘 아프다니요? 엄만 건강한 편이었는데요?"
"그렇지 않았을 겁니다."
감춰둔 주머니 속의 송곳이 튀어나와 너의 손등을 찍어내리는 것 같았다.
_
저녁밥을 지을라고 양석 꺼내려고 광에 갔는디 쌀독 바닥에 바가지가 닿을 때면 아이구 내 새끼들 낼 아침밥은 어쩐디야, 가슴이 철렁 내려앉던 시절이니 부엌일이 싫고 자시고도 없었고나, 큰솥 가득 밥을 짓고 그 옆의 작은 솥 가듣 국 끓일 수 있음 그거 하느라 힘들단 생각보다는 이거 내 새끼들 입속으로 다 들어가겠구나 싶어 든든했지야.
_
"이게 뭐냐?"
"지난 12월 31일에 새해를 맞이하며 글 쓰는 거만 빼고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재미로 적어 본 것야. 앞으로 십년 동안은 꾸준히 해야 할 것들이거나 하고 싶은 것들. 근데 내 어떤 계획에도 엄마와 무엇을 함께하겠다는 건 없더라. 쓸 때는 몰랐어. 엄마 잃어버리고 나서 다시 보니 그렇더라구.
여동생의 눈이 물리고 반짝였다.
_
그는 검사가 되지 못했다. 엄마는 그에게 니가 하고 싶어하는 것, 이라고 했지만 그는 그것이 엄마의 꿈이기도 했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이 청년시절에 꾼꿈을 이루지 못한 것이라고만 생각했지 그의 엄마의 꿈을 좌절시킨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엄마는 일평생 그가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게 한게 엄마 자신이라고 여기며 살았다는 것을 그는 이제야 깨달았다. 미안한 사람은 저예요, 나는 약속을 못 지켰으니까. 엄마를 찾아내면 오로지 엄마만을 돌보고 싶은 욕망으로 그의 가슴은 터질 듯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은 이미 그럴 능력을 상실했다는 것도 알았다.
_
아내가 딸이 쓴 책을 읽어달라고 했으면 그때의 당신이 읽어주기는 했을까? 아내를 잃어버리기 전에 당신은 아내를 거의 잊고 지냈다. 잊고 지내지 않을 때는 대부분 무엇을 청하거나 탓하거나 방치했다. 습관이란 무서운 것이였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공손한 말씨를 쓰다가가도 아내에게만 오면 말투가 퉁명스럽게 변했다. 가끔은 이 지방 사람들만이 쓰는 욕설이 튀어나오기도 했다. 당신은 공손한 말투는 아내에게는 써서는 안된다고 어디 책에 나와 있는 것처럼 굴었다. 그랬다.
_
아내를 지하철 서울역에서 잃어버리기 전까지 당신에게 아내는 형철 엄마였다. 아내를 다시 만나지 못하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하기 전까지는 당신에게 형철 엄마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나무였다. 베어지거나 뽑히기 전에는 어딘가로 떠날 줄 모르는 나무. 형철 엄마를 잃어버리고 당신은 형철 엄마가 아니라 아내를 실감하기 시작했다. 오십년 전부터 지금까지 대체로 잊고 지낸 아내가 당신의 마음에서 생생하게 떠올랐다. 사라지고 난 뒤에야 손으로 만질 수 있을 것처럼 육감적으로 다가왔다.
_
스무살에 만나 오십년이 흘러 이 나이가 되는 동안 아내로부터 가장 많이 들은 게 좀 천천히 가자는 말이었다. 평생을 아내로부터 천천히 좀 가자는 말을 들으면서도 어째 그리 천천히 가주지 않았을까. 저 앞에 먼저 가서 기다려주는 일은 있었어도 아내가 원한 것, 서로 얘기를 나누며 나란히 걷는 것을 당신은 아내와 함께하본 적이 없었다.
당신은 아내를 잃고 나서 자신의 빠른 걸음걸이를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터질 듯 했다.
평생을 당신은 늘 아내보다 앞서서 걸었다. 어느 때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길모퉁이를 돌기고 했다. 뒤쳐저서 아내가 당신을 부르면 당시은 왜 그리 걸음이 늦느냐고 타박했다. 그러는 사이 오십년이 흘렀다. 아내는 걸음이 늦긴 했어도 당신이 얼마간 기다려주면 뺨이 붉어진 채로 곁으로 다가와서는 여전히 좀 천천히 가먼 좋것네, 하며 웃었다. 그렇게 남은 생을 살아갈 줄 알았다. 그런데 한 걸음이나 두 걸음 늦었을 뿐인 그 서울역에서 당신이 먼저 탄 지하철이 출발해버린 뒤로 아내는 여태 당신 곁으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
_
말이란 게 다 할 때가 있는 법인디.. 나는 평생 니 엄마한테 말을 안하거나 할 때를 놓치거나 알아주겄거니 하며 살었고나. 인자는 무슨 말이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디 들을 사람이 없구나.
"..."
"지헌아?"
"예."
"부탁헌다... 니 엄마 ... 엄마를 말이다."
딸이 참지 못하고 수화기 저편에서 어 - 어어어 소리내어 울었다. 당신은 송아지 같은 딸의 울음소리를 수화기를 귀에 바짝 붙이고 들었다. 딸의 울음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당신이 붙잡고 있는 수화기 줄을 타고 딸의 눈물이 흐르는 것 같았다. 당신의 얼굴도 눈물범벅이 되었다. 세상 사람들이 다 잊어도 딸은 기억할 것이다. 아내가 이 세상을 무척 사랑했다는 것을, 당신이 아내를 사랑했다는 것을.
_
"엄마 얘기 해봐."
"엄마 얘기?"
"응 너만알고 있는 엄마 얘기."
"이름 박소녀. 생년월일 1938년 7월24일. 용모 흰머리가 많이 섞인 짧은 퍼머머리, 광대뼈 튀어나옴. 하늘색 셔츠에 흰 재킷, 베이지색 주름치마를 입었음. 잃어버린 장소 ...
큰딸애가 너를 향해 실눈을 떴다가 졸음에 떠밀리며 다시 눈을 감네.
"엄마를 모르겠어. 엄마를 잃어버렸다는 것 밖에는."
이제 가야 하는데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네. 여기 앉은 채 하루가 지났구나.
_
어느 해 칠월에 대학생인 너와 함께 장례행렬을 따라 시청 앞도 가보지 않았냐. 그때 네 조카가 태어나 내가 서울에 있었을 때였재.
기억력도 좋다고? 그러게 말이다.
기억력이라기보다는 잊을 수 없는 날이었재. 내게는 그날이 그런 날이었네.
....
"그냥 엄마랑 함께 가고 싶어 그래. 함께 가!"
그 말이 좋았고나.
_
사랑하는 내 딸. 너는 그걸 시작으로 내가 서울에 올때면 나를 식구들 속에서 빼내 극장에도 데리고 가고 능에도 데리고 갔재. 서점에 있는 음반 파는 곳에도 데리고 가 헤드폼을 내 귀에 대주기도 했재. 이 서울에 광화문이란 곳이 있다는 거, 시청 앞이 있다는 거, 이 세상에 영화와 음악이 있다는 것을 너를 통해 알았고나. 엄마는 네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삶을 살 거리고 생각 했고나. 니 ㅣ형제들 주 ㅇ에서 가난으로부터 자유로운 애가 너여서 뭐든 자유롭게 두자고 했을 뿐인데 그 자유로 내게 자주 땅 세상을 엿보게 한 너여서 나는 네가 더 맘껏 자유로워지기를 바랬고나. 더 양껏 자유로워져 누구보다도 많이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살기를 바랬네.
_
지나간 시간에 함께한 일들은 어찌 되는 건지 당신은 알고 있소이?
당신한테 묻고 싶은 말을 내 딸애한테 물었더니 내 딸은 엄마가 그런말을 하니 너무 이상해, 하면서도, 사라지는게 아니라 스며드는 거 아닐까, 엄마! 합니다. 무슨 말이 그리 어려운지. 당신은 알아 듣겠소? 이젠 지나가버렸다고 생각하는 일들이 사실은 모두 여기에 스며들어 있다는데, 느끼지 못할 뿐 옛날 일은 지금 일과 지금 일은 앞의 일과 또 거꾸로 앞의 일은 옛날 일과 다 섞여 있다는데 이제 이어갈 수 없네.
_
당신 이름은 이은규요. 의사가 다시 이름을 물으면 박소녀,라 말고 이은규라고 말해요. 이젠 당신으 놔줄 테요. 당신은 내 비밀이었네, 누구라도 나를 생각할 때 짐작조차 못할 당신이 내 인생에 있었네. 아무도 당신이 내 인생에 있었다고 알지 못해도 당신은 급물살 때마다 뗏목을 가져와 내가 그 물을 무사히 건너게 해주는 이였재. 나는 당신이 있어 좋았소. 행복할 때보다 불안할 때 당신을 찾아갈 수 있어서 나는 내 인생을 건너올 수 있었다는 그 말을 하려고 왔소.
...나는 이제 갈라요.
_
아, 봄날 새싹들처럼 정신없이 솟아나는 이 기억들을 어디서 멈춰야 할지를 모르겄네. 잊혀진 온갖 기억들이 다 몰려오네. 부엌 살강에 엎어진 밥그릇이며 장꽝의 크고잦ㄱ은 항아리들이며 다락방으로 올라가는 좁다란 나무계단이며, 흙담 밑에서 태어나 담장을 타고 무성히 뻗어나가던 호박 넝쿨들까지.
집을 이렇게 꽁꽁 얼게 두지 말아요.
...
딸 애가 깨끗하게 닦아놓은 하얀 운동화짝 같은 것이 햇볕 아래 말라가는 풍경이 이리 아른아른 거릴까나. 큰딸애는 저 우물에 담긴 하늘을 보길 좋아했네. 물을 긷다가 우물가에 턱을 고이고 있는 모습이 저기 서 있는 것만 같네.
잘있어요... 난 이제 이 집에서 나갈라요.
_
내 새끼. 엄마가 양팡을 벌리네. 엄마가 방금 죽은 아이를 품에 안듯이 나의 겨드랑이에 팔을 집어넣네. 내 발에서 파란 슬리퍼를 벗기고 나의 두발을 엄마의 무릎으로 끌어올리네. 엄마는 웃지 않네. 울지도 않네. 엄마는 알고 있었을까. 나에게도 일평생 엄마가 필요했다는 것을.
_
언니가 저번에 그랬지. 나만 아는 엄마 얘기를 해달라고, 나는 엄마를 모르겠다고 했지. 엄마를 잃어버린 것밖에는 모르겠다구. 지금도 그건 마찬가지야. 특히 엄마의 힘이 어디서 나왔는지 나는 그걸 모르겠어. 생각해봐. 엄마는 상식적으로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살아온 인생이 아니야. 엄마는 엄마가 할 수 없는 일까지도 다 해내며 살았던 것 같아. 그러느라 엄마는 텅텅 비어갔던 거야. 종내엔 자식들의 집 하나도 찾을 수 없는 그런 사람이 된거야.
_
엄마가 우리만 생각할 수 밖에 없었던 건 엄마 상황에서 그렇다고 쳐. 그런데 우리까지도 어떻게 엄마를 처음부터 엄마인 사람으로 여기며 지냈을까. 내가 엄마로 살면서도 이렇게 내 꿈이 많은데 내가 이렇게 나의 어린 시절을, 나의 소녀 시절을, 나의 처녀 시절을 하나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는데 왜 엄마는 처음부터 엄마인 것으로만 알고 있었을까. 엄마는 꿈을 펼쳐볼 기회도 없이 시대가 엄마 손에 쥐여준 가난하고 슬프고 혼자서 모든 것과 맞서고, 그리고 꼭 이겨나갈밖에 다른 길이 없는 아주 나쁜 패를 들고서도 어떻게든 최선을 다해서 몸과 마음을 바친 일생이었는데, 난 어떻게 엄마의 꿈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을까.
...
나는 엄마처럼 못 사는데 엄마라고 그렇게 살고 싶었을까? 엄마 옆에 잇을 때 왜 나는 이런 생각을 한번도 하지 않았을까. 딸인 내가 이 지경이었는데 엄마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얼마다 고독했을까.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채로 오로지 희생만 해야 했다니 그런 부당한 일이 어떻게 있을 수 있어.
언니. 단 하루만이라도 엄마와 같이 있을 수 있는 날이 우리들에게 올까? 엄마를 이해하며 엄마의 얘기를 들으며 세월의 갈피 어딘가에 파붇혀버렸을 엄마의 꿈을 위로하며 엄마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내게 올까? 하루나 ㄱ아니라 단 몇시간만이라도 그런 시간이 주어진다면 나는 엄마에게 말할테야. 엄마가 한 모든 일들을, 그걸 해낼 수 있었던 엄마를,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엄마의 일생을 사랑하다고. 존경한다고.
_
오빠는 엄마의 일생을 고통과 희생으로만 기억하는 건 우리 생각인지도 모른다고 했다. 엄마를 슬프게만 기억하는 건 우리 죄의식 때문일지 모른다고. 그것이 오히려 엄마의 일생을 보잘것없는 것으로 간주하는 일일 수도 있다고.
_
엄마를 잃어버리 다음에야 너는 엄마의 이야기가 너의 내부에 무진장 쌓여 있음을 새삼스럽게 실감했다. 끊임없이 반복되던 엄마의 일상. 엄마가 곁에 있었을 땐 깊이 생각하지 않은 엄마의 사소하고 어느 땐 보잘것없는 것같이 여기기도 한 엄마의 말들이 너의 마음속으로 해일을 일으키며 되살아났다. 너는 깨달았다. 전쟁이 지나간 뒤에도, 밥을 먹고 살 만해진 후에도 엄마의 지위는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이 아버지와 밥상 앞에 둘어앉아 대통령선거 얘기를 나눌 때도 엄마는 음식으 ㄹ만들어 내오고 접시를 닦고 행주를 빨아 널었다. 엄마는 대문과 지붕과 마루를 고치는 일까지도 도맡아 햇다.엄마가 끊임없이 되풀이해내야 했던 일들을 거들어 주기는 커녕 너조차도 관습으로 받아들이며 아예 엄마 몫으로 돌려놓고도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다는 것을. 때로 오빠의 말처럼 엄마의 삶을 실망스러운 것으로 간주하기까지 했다는 것을. 인생에 당 한번도 좋은 상황에 놓인 적이 없던 엄마가 너에게 언제나 최상의 것을 주려고 그리 노력했는데도. 외로울 때 등을 토탁여준 사람 또한 엄마였는데도.
_
시청 앞 은행나무에 손톱만한 새잎이 돋기 시작했을 때 너는 삼청동으로 빠지는 큰길의 아름드리나무 밑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엄마가 없는데도 봄이 오고 있다니.
언땅이 녹고 세상의 모든 나무엔 물이 오르고 있다니.
그동안 너를 버티게 하던 마음, 엄마를 찾아낼 수 있으리란 믿음이 뭉개졌다. 엄마를 잃어버렸느넫도 이렇게 여름이 오고 가을이 또 오고 또 겨울은 찾아오겠자. 나도 그 속에서 살고 있겠지.
_
너는 깨달았다.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면 습관적으로 엄마를 생각하며 살아왔다는 것을. 엄마를 생가하면 무엇인가 조금 바로잡히고 내부로부터 뭔가 다시 힘이 솟구쳐올라오는 것 같았으니까.
_
<작가의말 중>
그렇다고 내가 온순하게 어머니의 얘기를 듣기만 한 건 아니다. 어떤 일을 두고는 그게 아니잖아!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목소리를 높이며 싸우기도 했다. 같은 이불 속에서 서로 숨을 몰아쉬며 등을 돌리고 누워 있던 순간도 있었다. 마음이 다친 어머니가 집에 가겠다고 짐을 싸들던 순간들도. 그런데도 나는 그 새벽의 모든 순간에 분명 행복을 느꼈다. 그것도 완전한 행복을. 그 행복의 여운은 넓고 깊어서 대체 이 기운이 어디에서 흘러나온 것인지 오래 생각하게 만들었다. 어머니가 아직 내 곁에 있다는 것. 어머니 곁에 누워서 아침이 오기를 기다리며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행운을 내가 누리고 있다는 것. 그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