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10

[시집] 찬란 _ 이병률 _겨우내 아무 일 없던 화분에서 잎이 나니 찬란하다흙이 감정을 참지 못하니 찬란하다 감자에서 난 싹을 화분에 옮겨 심으며손끝에서 종이 넘기는 소리를 듣는 것도오래도록 내 뼈에 방들이 우는 소리 재우는 일도 찬란이다 살고자 하는 일이 찬란이었으므로의자에 먼지 앉는 일은 더 찬란이리찬란하지 않으면 모두 뒤처지고광장에서 멀어지리 지난밤 남쪽의 바다를 생각하던 중에등을 켜려다 전구가 나갔고검푸른 어둠이 굽이쳤으나생각만으로 겨울을 불렀으니 찬란이다 실로 이기고 지는 깐깐한 생명들이 뿌리까지 피곤한 것도햇빛의 가랑이 사이로 북회귀선과 남회귀선이 만나는 것도무시무시한 찬란이다 찬란이 아니면 다 그만이다죽음 앞에서 모든 목숨은찬란의 끝에서 걸쇠를 건져 올려 마음에 걸 것이니 지금껏으로도 많이 살았다 싶은 것은 찬란을 .. 2012. 6. 13.
순간의 꽃 _ 고은 * 소쩍새가 온몸으로 우는 동안별들도 온몸으로 빛나고 있다이런 세상에 내가 버젓이 누워 잠을 청한다 *노를 젓다가 노를 놓쳐버렸다비로소 넓은 물을 돌아다보았다 *할머니가 말하셨다아주 사소한 일바늘에실 꿰는 것도 온몸으로 하거라 요즘은 바늘구멍이 안 보여 *정신병원은 화려하다나는 황제다 나는 육군소장이다나는 UN 사무총장이다 나는 가수 박훈아다나는 신이다나는 미스코리아다나는 탤런트 김보길이다 정신병원은 정신병원의 별관이다 *장날 파장 때지난해 죽은 삼만이 어미도얼핏 보였다저승에서도 장 보러 왔나 보다 *서시베리아 저지대에니세이 강 상공을 지나간다오브 강토볼스크 쯤인가옴스크 쯤인가고도 1만 킬로미터 창 안의 나에게저 아래한 유리창 햇빛이 반사되어 날아왔다 3초쯤이 전부였나 곧 우랄 산맥 상공을 지나갔다 잘 .. 2012. 5. 28.
고엽 _ 자크 프레베르 기억하라 함께 지낸 행복했던 나날들을그때 태양은 훨씬 더 뜨거웠고인생은 훨신 더 아름다웠지마른 잎들을 갈퀴로 모으고 있네.나는 그 나날들을 잊을 수가 없어..마른 잎들을 갈퀴로 모으고 있네모든 추억과 모든 뉘우침도 다 함께북풍은 그 모든 것을싣고 가느니망각의 춥고 어두운 밤 저편으로나는 그 모든 것을 잊어버릴 수는 없었지네가 불러준 그 노랫소리그건 우리 마음 그대로의 노래였고너는 나를 사랑했고 나는 너를 사랑했고우리 둘은 언제나 함께 살았었네하지만 인생은 남몰래 소리도 없이사랑하는 이들을 갈라놓네그리고 헤어지는 연인들이 모래에 남긴 발자취는 물결이 다 지워버리네 2012. 5. 27.
[시집] 작은 기도_이해인 *꽃의 말 고통을 그렇게 낭만적으로 말하면나는 슬퍼요 필 때도 아프고질 때도 아파요 당신이 나를 자꾸바라보면 부끄럽고떠나가면 서운하고나도 내 마음을 모를 때가 더 많아미안하고 미안해요 삶은 늘 신기하고배울 게 많아울다가도 웃지요 예쁘다고 말해주는당신이 곁에 있어행복하고 고마워요 앉아서도 멀리 갈게요노래를 멈추지 않는 삶으로겸손한 향기가 될게요 *어떤 행복 하늘이 바다인지바다가 하늘인지 기쁨이 슬픔인지슬픔이 기쁨인지 삶이 죽음인지죽음이 삶인지 꿈이 생시인지생시가 꿈인지 밤이 낮인지낮이 밤인지 문득문득 분간을못할 때가 있어요 그런데 분간을 잘 못하는이런 것들이별로 문제가 되지 않네요그냥 행복하네요 이런 행복을무어라고 해야할지그냥이름 없는 행복이라고 말할래요 *꽃을 보고 오렴 네가 울고 싶으면꽃을 보아라 웃고.. 2012. 5.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