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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경영연구소] 자기 이유

by yoni_k 2015. 8. 31.


아버지가 어린 아들을 데리고 산책을 나갔다가 말합니다. 무엇인가 아들에게 가르쳐 주고 싶었겠지요. “얘야, 이런 것이 독버섯이란다!” 독버섯이라고 지목을 받은 버섯이 충격을 받고 쓰러집니다. 옆에 있던 버섯이 아무리, 너처럼 친절하고 정이 많은 친구가 독버섯일 리가 없다고 위로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정확하게 자기를 찍어서 독버섯이라고 하는 말을 똑똑히 들었다는 거지요.  위로하다못해 친구가 한 말은 “그건 사람들이 하는 말이야!”였습니다. “독버섯”은 버섯을 먹는 사람들의 논리이지 버섯의 논리가 아닌 거고, 모름지기 버섯은 버섯 자체의 이유로 판단해야 한다는 거지요. 그것이 “자기의 이유”인 거고 “자기의 이유”를 갖고 있는 한 결코 좌절하지 않을 수 있다!  

신영복선생님은 <담론>의 마지막 장에 이 예화를 실어두었습니다(반 에덴의 동화 “어린 요한”에 나온다고 합니다) 20년간 감옥살이를 하며 자살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겨울 독방에서 만나는 햇볕 덕분이었다는 토로 다음입니다. 신문지 크기만한 햇볕만으로도 세상에 태어난 것은 손해가 아니었다는 거지요. 그 연장선에 “자기의 이유”를 논한다는 것은 엄청난 비중이지요. 이 시대의 스승 신영복선생님이 후진들에게 건네는 간곡한 말씀 중의 백미라고 생각됩니다. “자기의 이유”를 줄이면 “자유”가 된다는 말씀과 함께요.

삶과 공부가 어우러진 선생님의 글에는 구수한 유머까지 곁들여져 싱글싱글 웃어가며, 감복하며 읽었습니다. 복잡다단한 자 본주의의 논리와 어렵게만 느껴지는 좋은 삶의 본령을 단칼로 정리해주는 논지에 눈앞이 훤해졌고, 그 어조가 한없이 따뜻하여 절로 무릎 꿇고 싶었습니다. <담론>에는 어려운 얘기를 단숨에 와 닿게 하는 예화가 수없이 실려 있는데 그 중에서도 ‘버섯의 자기이유’가 제일 가슴에 와 닿네요.

적지않은 세월을 오로지 “자기 이유”만으로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제게는 선천적 “자기 이유” 과잉증이라도 있는 걸까요, 스물셋에 달려간 농촌살이로부터, 이제는 전생처럼 느껴지는 결혼생활, 그 와중에 성공과 실패의 맛을 골고루 보여준 학원운영, 그리고 쉰 살에 맞이한 글쓰기- 프리랜서의 삶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상식적인 것이 없었네요. 검증된 길만 인정하는 주류의 입장에서 보면 조마조마하기까지 했겠어요. 내 선택에 후회는 없습니다. 

문제는 온통 “자기 이유”로 일관한 삶에 성과물이 너무 적다는 것입니다. 이 나이가 되어보니 겉으로 드러나는 ‘자기 이유’보다 성실함을 택한 이들은 경제적인 안정을 이루었는데, 저는 여전히 별난 사람으로 치부되어 변두리에 자리잡고 있을 뿐입니다. 이제 환상을 가질 나이는 지났지요. 세월이 치기와 응석을 다 날려버려서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아직도 게을러빠진 내가 너무 초라하고 한심해서, 대단한 성과물을 보면 뭉클합니다. 얼마전에는 영화 <베테랑>을 보다가 울기도 했는데요, 영화의 후반 액션 신이 대단하고,  황정민과 유아인의 명품연기도 좋아보여서 나는 뭔가 하는 자책감이 든 거지요. 그러고보니 고졸의 영화감독 류승완이 이룬 성취도 대단하네요. 일찌감치 진로를 결정하고 영화를 실컷 보려고 비디오가게에서 일하던 청년이 천만 관객을 목전에 두고 있으니  “자기 이유”의 승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신영복선생님께서 책의 말미에 “자기 이유”를 배치한 것은 그것을 갖지 못한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반증도 될 터인데, 나처럼 “자기 이유”가 넘치는 사람이든, 반대로 “자기 이유”를 보강해야 하는 사람이든,  삶을 살아가는 원칙에는 다를 바가 없겠지요. 바로 이런 것. 


“모든 인간은 지상의 것을 빌려 쓰고 지나갈 뿐이다. 생에 대한 겸손함과 순결성의 힘만 있다면 누구도 결코 가난하지 않다. 지금 어려운 시대에 힘겹다고 느끼거나 자신이 무너졌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아직 남아있는, 어쩌면 자신이 이룬 몇 안 되는 진실의 알갱이인 최소한의 현실을 소중히 붙들고 빛이 나도록 닦는 일로부터 다시 시작하라고.”-전경린의 ‘붉은 리본’에서-



- 한명석 , 변화경영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