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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m

기억의 행성 _ 조용미

by yoni_k 2013. 6. 27.








기억이라는 혹은 추억이라는 이름의 그 대리석 같고 절벽 같은 견고함을 아시는지요 기억은 금강석처럼 단단합니다 견고한 모든 것은 대기 속에 녹아 사라지고 신성한 모든 것은 모욕당한다 했던가요 기억은 물이 되어 호수가 되고 바다가 되고 우리가 양육해온 모든 별들은 결국 부수어지고 말겠지요


기억은 지구를 반 넘어 채우고 있습니다 지구는 기억의 출렁이는 파란 별, 지구는 기억이 파도치는 행성, 지구의 정체는 바로 인간의 기억입니다 빙산이 녹아 해마다 기억의 수위가 높아집니다 기억이 뛰어 오르거나 넘쳐나는 것을 막기 위해 강에는 얼음이 덮이지요 

수증기가 끊임없이 대기권 밖으로 빠져나가도 지구의 기억이 줄어들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바다나 육지에서 증발한 기억은 구름이 되고 비와 눈이 되어 내리고 또 구름이 되고 바다로 가 다시 빗물이 되어 지상으로 스며듭니다 얼마나 많은 기억들이 대기 중에 흐르고 있는지요

기억은 영상 4도에서 가장 무겁기 때문에 한겨울에도 온갖 기억의 파편들은 굳어버리지 않고 얼음장 밑에서 헤엄쳐 다니며 살 수 있습니다 기억은 지구에서 가장 풍부한 자원입니다 그러므로 지구를 기억의 행성이라 부르지요

그러나 지구 전체의 기억은 많지만 우리가 쓸 수 있는 기억은 극히 적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기억의 행성 지구는 사실 기억이 얼마 남지 않았지요 그 견고한 기억도 대기 속에 사라지고 신성한 지구만 우주의 기억 속에 남게 될 날도 머지않았습니다 지구는 결국 변형된 기억으로 남게 된다는 것을 어쩌면 우리는 아주 모르고 싶은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