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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보통의 존재 _ 이석원

by yoni_k 2012. 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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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손잡는 것을 좋아한다.

모르는 남녀가 거리낌 없이 하룻밤을 보내는 원 나잇 스탠드가 요즘처럼 횡행하는 세상에서도

누군가와 손을 잡는다는 행위가 여전히 특별할 수 있다는 것.

그 느낌이 이렇게나 따뜻하고 애틋할 수 있다는 것이

나는 눈물겹다.


잠시 잠깐 만난 사이에서는 결코 손을 잡고 영화를 보거나 

거리를 걷는 일 따위는 할 수 없으니까.

손을 잡는 다는 것은 그처럼 온전한 마음의 표현이다.

누구든 아무하구나 잘 수 있을지는 몰라도

아무하고나 손을 잡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손잡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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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정말로 누군가의 관계에서 어느날 정열이 사라져 버린 상태를 받아들이고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사랑을

긴 호흡으로 이어갈 수 있다면...

어쩌면 나는 제대로 손 한번 잡아보지 못했으면서

너무 빨리 사랑에 대한 결론을 내리고 살아온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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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뭘까. 마음은 왜 변할까.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도 그 애를 생각하면 문정동 어느 작은 공원문 앞에 걸터앉은 채 책을 읽으며 나를 기다리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사랑한 그녀의 전부였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연민이건 뭐건 상관없다. 설사 그게 사랑이 아니라 해도 사랑보다 중요하지 않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사랑이 무엇인지, 마음은 왜 변하는지 나는 여전히 모른다. 그렇지만 그때 그 오징어잡이배들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 아직까지도 아쉬운 것을 보면, 마음이란 것이 그렇게 쉽사리 소멸하는 것만은 아닌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그로부터 6년 뒤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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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혼자 있을 때

이루 말할 수 없이 더럽고

이루 말할 수 없이 한가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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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의 안전하고도 확실한 보장은 마음의 평화와 긴밀한 관련이 있다. 때문에 사람들이 생각하는 행복의 조건들, 이를테면 돈이나 건강, 가정의 화목 같은 요소들에 가려 그 중요성이 간과되기 쉽지만 사실은 그 어떤 것보다도 우선적으로 배려되어야 할 중요한 가치이다. 


공개되지 않는다는 느낌은 사람을 자유롭게 한다. 그래서 나의 공간과 머릿속 생각, 물건들의 안전은 소중하다. 그러나 아무도 없는 혼자 있는 집에서조차 혹 어떤 존재가 나를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망상을 한번쯤 가져본 사람이라면 완벽한 비공개의 자유란 얼마나 갖기 어렵고 소중한지 공감할 것이다. 일탈이란, 아무도 모르는 머나먼 타지에서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나의 집, 아무도 들여다 볼 수 없는 곳에서 언제든 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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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란 이 사람한테 받은 걸 저 사람한테 주는 이어달리기와도 같은 것이어서 전에 사람한테 주지 못한 걸 이번 사람한테 주고 전에 사람한테 당한 걸 죄 없는 이번 사람한테 푸는 이상한 게임이다. 불공정하고 이치에 안 맞긴 하지만 이 특이한 이어달리기의 경향이 대체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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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생각해보세요. 

내가 듣기 좋은 말만 하거나 당신에 대해 어떤 반대도 하지 않았다면 난 당신을 정말로 좋아하는 것은 아니에요. 

친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거죠. 솔직하다는 말을 많이 듣는 편이지만 정확히 말하면 난 나에대해서만 솔직해요.


잘 생각해보세요.

우리가 싸운 적이 있거나 내가 한 말 때문에 당신이 열 받은 적이 있었는지. 그런 적이 있다면 우린 친구예요.


좋아해서 그런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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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 적용되는 이러한 가차 없는 생성소멸의 법칙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아련하게 만들어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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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종말에 대한 너무도 거대하고 확신에 찬 두려움을 갖고 있는 남자와 아무도 자신을 진심으로 좋아해주지 않을 거라는 극심한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여자와의 만남. 여자의 관심은 상대가 자신에게 줄 상처가 얼마나 될 것인가를 가늠해보는 데에 온 신경이 쏠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남자가 어떤 사람인가를 알아야 했고 그의 과거 연애행태가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자꾸만 과거의 사례들을 묻고 또 물어서 그것을 데이터화하여 판단하려 합니다 . 이 남자에게 어디까지 내 마음을 주어야 할까. 얼만큼만 좋아해야 상처받지 않을 수 있을까. 이럴 땐 이렇게 해야 다치지 않을 수 있겠구나. 등등. 모든 것은 결국 상처받지 않기 위한 노력의 일환입니다. 


"한가지 물어봅시다.

사랑은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하는 겁니까.

아니면 사랑해서 하는 겁니까?"


"정말 몰라서 물어보시는 거예요?

당연히 상처받지 않기 위해 하는 거지요. 

전 결코 상처받지 안흔 것, 두려움 속에 자신을 지키려는 것이 사랑에 자신을 던지는 것보다 중요하지 않은 일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상처는 사랑보다 몇 배나 더 크고 오래가니까. 사랑하는 마음이 크면 클수록 더 그러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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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종말과 상처에 대한 이 모든 확실하고 불안하며 어두운 전망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아랑곳없이 피어납니다. 씨앗이 바람을 타고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 어디라도 날아가 생존이 불가능해 보이는 암벽 틈이나 낭떠러지 위에서까지 얼마든지 꽃을 피우듯 사랑은 그렇게 어디서든 피어납니다. 원하든 원치 않든 일단 시작되고 나면 누구든 바로 모든 사랑의 단계 중에서 가장 황홀하고 아름다운 '처음'의 순간을 피할 수는 없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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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살아가면서 내가 정말 사랑해야 하는 것들은 하나 같이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들뿐입니다. 만약 내가 직접 고를 수 있었다면 나는 내  얼굴을 이렇게 만들지도 않았을 것이고, 내 몸, 내 키, 내 머리와 재능, 우리집, 내 나라, 그 어떤 것도 지금과는 다른 선택을 했을 겁니다.  뿐입니까. 나의 성별 또한 내가 택한 것이 아니며 나의 이웃, 나의 가족, 친척, 친구 등 어느 것 하나 내 의지대로 고른 것은 없죠. 인생이라는 게임이  왜 이렇게 모순되고 불공평한지 38년을 살아왔지만 아직 잘 모릅니다. 다만 분명한 건 인생이란 사랑할 대상을 골라서 사랑하도록 허용하지는 않는다는 것 뿐. 

 그러나 그 불공평함이 결국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을 보면, 게임의 승부는 누가 하루라도 더 빨리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을 긍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가에 달려 있는지도 모릅니다. 만약 그렇다면 어렸을때부터 우리집은 왜 이럴까, 나는 왜 이것밖에 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저처럼 많이 한 사람들은 승부에서 꽤나 뒤처진 셈이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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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연인들이 사랑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이며 연애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씁쓸하지만 헤어짐이 쉬워진 대신 이제는 헤어짐조차 영원하지 않게 된 것을 위안으로 삼아야 하는 걸까요? 오늘날 이별 뒤의 사랑은 이렇게 다시 볼 수 없는 그리움이 아닌 담담함으로 곁에 남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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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존중한다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사람은 자신의 필요에 의해서, 자신의 입장과 시각으로 타인을 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존재의 본질이란 어쩌면 타인에 의해 인신되는 것 외에 다른 답이 없을지도 모른다. 


'본질을 아는 것보다, 본질을 알기 위해 

있는 그대로를 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것이 바로 그 대상에 대한 존중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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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편의점에 들러 내가 좋아하는 먹을 걸 산다. 빵? 라면? 육포? 맥주? 요플레? 아이스크림과 빵이 혼합된 아시나요? 무엇이든 좋다. 그날 그 순간의 기호에 따라 산 것들을 들고 집에 들어와 컴퓨터를 하거나 티비를 보며 편히 그것을 먹을 때 드는 그 행복감. 그 즐거움을 무엇과 바꿀 수 있을까. 단언하지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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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선언은 항상 선언에 그치고 마는가. 

왜 말로써 세상에 던져지는 것들은 항상

현실에 의해 조롱당하는 신세가 되고 마는 걸까.


더 이상 타인에게 기대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내가 되었다고 자신있게 말하는 순간, 

거짓말처럼 나를 옴쭉달싹 못하게 하는 상대가 나타난다.

이제 나는 너에게 완벽히 자유롭다고 말하는 순간,

깨닫는다.

결코 아직은 그럴 수 없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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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태껏 몇 명의 사람에게서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왔나,

그 말을 해주던 사람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으며

지금은 또 누구를 사랑하고 있는가. 왜 어른들은 

일생에 여러 번의 사랑이 있을 거라고 가르쳐주지 않았나.

왜 어른이 되어 마주하는 사랑이

중학교 때의 풋사랑만도 못한 것인가.


말이란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기억될 뿐이다.

 나를 황홀하게 했던 수많은 말들은 언제나

내 귀에 들려온 순간 사라져버렸다.

말이란 이처럼 존재와 동시에 소멸해버리기에 

그토록 부질없고 애특한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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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자신에 대한 기대라는 것이 있고 그것이 실제로 오르기 어려운 산이라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어느 정도의 세월이 필요하다. 그 깨달음을 스물다섯에 얻는다면 그건 바보 같은 일일 것이고, 서른이라 한들 속단이긴 마찬가지다. 그러나 마흔 언저리쯤 되면 반드시 포기하고 받아들여야 할 때가 온다. 그때가 되면 마지막 몸부림을 쳐보고 온몸으로 거부도 해보지만 결국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나 자신에 대한 거부할 수 없는 확인이다. 

자신을 안다는 것. 그 잔인한 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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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앓는 이를 단박에 빼지 못한다.

어릴 적 유치가 흔들거리기 시작할 때면 난 몇 달에 걸쳐서 혀로 그 놈을 단지 살살 문지르기만 했다. 아주 조금씩, 놈을 움직이며 잇몸에서 가능한 고통 없이 빠지기만을 기다리는 것이다. 

얼마가 걸리든.


커서 어른이 되어보니

사랑을 하고 난 뒤 나의 이별의 방식 또한 다르지 않았다.


마친내 빠지기 전까지.

나는 앓는 이가 되어 살살... 가능한 오래도록 잇몸에 머물러 있었다.

아주 오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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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들도 다 외롭다는 사실마저 위로가 되지 않을 땐 책을 읽어봐. 조금은 나아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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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같은 값이면 기쁨보다는 슬픔,  혹은 불안, 걱정이 더 센 것이며 사랑보다 미움과 원망이 더 진하고, 획득하는 것보다 상실이 더 크게 와 닿는 것일까.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운동경기와 달리 인생이란 공격보다는 수비가 더욱 중요한 일일지 모른다고. 한 열 배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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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씁쓸한 것은 사람이 결혼하자고, 우리 같이 살자고 하는 마음이 아무리 간절해도 제발 헤어졌으면 하는 마음보다 강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하나가 되고 싶다고 눈이 멀어서 맹렬히 달려갔다가 나중에는 다시 혼자가 되고 싶어 더 무서운 속도로 돌아오는 것. 

그게 사람의 이기심이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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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죽음을 접하고 감당키 어려운 슬픔을 느낄 때면 우리는 

'죽음이란 무엇일까?'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되죠.

그러나 기어이 뒤따라오는 질문은 결국,

'삶은 무엇인가?'하는 겁니다.


놀랍지 않나요.

그래서 죽음과 삶이란 정말이지 지척에 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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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망이란 어쩌면 단지 꿈꾸는 단계에서만 아름답고 행복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토록 바라던 많은 것들이 실제로 내 것이 되었을 때, 상상하던 만큼의 감흥을 얻었던 적은 별로 없었으니까.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서점에서 공연을 해보겟다던 꿈도 몇 번씩이나 이뤄봤지만 다른 공연들과 별반 감흥이 달랐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 중요한 건 이루어낸 로망보다는 아직 이루지 못한 로망이 얼마나 남아 있는가,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꿈을 품게 될 것인가 하는 점일 것이다. 다행히 내게는 로망이 아직 몇 개 더 남아 있고 앞으로도 조금 더 생길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리고 그것들은 힘닿는 대로, 비록 실망하는 한이 있더라도 시도해볼 것이다. 왜냐고?


로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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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란?

누군가의 필요의 일부가 되는 것.

그러다가 경험의 일부가 되는 것.

나중에는 결론의 일부가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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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어려서부터 비정상적으로 의무적인 관계 맺기를 강요당해왔다는 것이다. 왜 친구가 많으면 부러움의 대상이 되어야하는지 왜 혼자 극장엘 가면 다른 사람 눈치를 봐야하는 건지 난 알수가 없다. 친구가 백 명 있는 사람도 있는 거고 친구가 두 명 있는 사람도 있는 거다. 밥을 혼자서 먹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거다. 

그런데 왜 우리는 늘 두 줄로 줄을 서며 짝을 짓도록 강요받았을까. 왜 혼자 다니면 놀림의 대상이 되어야 했을까. 


내가 우리 사회의 이러한 강요된 관계 맺기 문화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이 어떨땐 너무나 숨이 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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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중의 으뜸이 바로 평범한 행복이다,

왜냐하면 삶이, 세상이 우리를 가만 놔두질 않는다.

일상에서 무사히 하루를 보내는 것 만한 행복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날, 당신의 인생은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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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이후 한 가지 소원이 있다면 내가 생을 마친 후 나의 생을 장식했던 모든 출연진들이 나타나 축하의 꽃다발과 함께 박수를 치며 나를 격려하는 그런 순간을 맞이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웃으며 내게 이렇게 말해준다. 

"모든 게 쇼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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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사랑이 달콤하디?

달콤한 사랑해본 사람 어디 손 좀 들어봐.

얼굴 좀 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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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면허시험 볼 때 다들 말리는 당일치기로 접수를 해놓고 급한 맘에 야매로 교습해주는 사람한테 돈 삼만원을 주고 코스를 도는데 그 야매 인생을 사는 사람조차 인생의 법칙을 명확히 알더라는 것 아닙니까.


 " 모든 것이 운입니다. 운이 중요해요. 당신이 어떤 경관을 만나느냐, 깐깐한 사람인가 아닌가, 당신의 코스가 쉬운 A코스로 될 것인가, 복잡한 B코스로 될 것인가, 출퇴근 시간이라 차들이 많아지는가, 아닌가..

 이 모든 것들이 운이죠. 그게 중요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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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하다. 내가 몇 번을 말해야 되냐.

연애할 때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하지 말라니까.


"이게 여자 친구인 나한테 할 수 있는 소리예요?"

이런 꺼 쌍땀하찌마> 니까 끄렇꼐 느꼈으면 그게 진실이여.

그걸 자꾸 뭔가 착오가 있겠지,

원래 스타일이

그래서 그렇지 진심은 아니겠지,

이런 식으로 위안을 삼지 말라고.